“도망가는 것은 쉬운 선택이다. 중요한 건 배의 선장처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31일 당내 절반에 가까운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에게 “배의 선장처럼 배가 순탄할 때든 순탄하지 않을 때든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와 신념이 있을 때 지도자로 나서는 거 아니겠나. 지금은 이 난국을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김현아 대변인과 오신환 홍보본부장,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이 당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데 대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민생행보 등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당사에 상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6일 의원총회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도 직접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한 뒤, 28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1시간30분동안 대화하며 비서진 교체 등 인적쇄신을 건의했다. 당 안팎의 정치권 원로를 만나며 조언도 구하고 있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당내 사퇴 요구도 많지만 당 대표가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진득하게 하라는 전화가 많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단 당 지도부는 여야가 특검에 합의하고 거국내각이 궤도에 오르는 시점을 ‘사태 수습’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 대표를 포함해 현재 친박계 지도부로는 사태 수습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비박계 중진의원은 “거국내각이 구성되면 대통령이 당적을 유지하는 것도 우스운 모양새가 된다. 결국 대통령을 보호하는 데 급급한 현재 지도부가 야당과 협상을 풀어낼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현재 상황에서 당 지도체제 논의는 앞서나가는 일이며 청와대 비서진·내각 교체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또 당장 지도부가 물러날 경우 이 대표 후임이 마땅치 않은 데다 비주류와 당권싸움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청원·최경환 등 친박계 중진 의원들도 지난 29일 모임에서 박 대통령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당이 뒷받침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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