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대통령 하야’에 선 긋지만
내각 구성 주도권 샅바싸움 중
내각 구성 주도권 샅바싸움 중
거국중립내각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주장하는 거국내각 구성이 ‘사실상의 대통령 하야 요구’라며 날을 세우고, 야당은 새누리당의 거국내각 제안이 ‘국면전환을 노린 정략 카드’라고 일축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초래된 국정공백의 현실적 해결책이 거국내각 구성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인식을 함께 하면서도 내각의 구성과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 누가 주도할 것인가
공방의 핵심은 거국내각 구성과 운영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의견을 일정부분 수렴한 뒤 대통령이 여당과 협의해 총리와 각료를 임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내각에 대한 집권여당의 영향력이 원천 차단될 경우 추후 거국내각 아래서 진행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책임 규명의 칼날이 여당 핵심부를 겨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야당 역시 거국내각의 총리와 각료 임명을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거국내각 카드가 자칫 국정붕괴에 대한 집권여당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정국수습의 부담만 야당이 나눠지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야당은 이 때문에 거국내각의 선결조건으로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여야가 합의한 총리가 ‘조각’을 주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 2선 후퇴 방식, 대통령 권한의 위임 범위는?
거국내각 구성에 합의하더라도 갈등의 ‘뇌관’은 곳곳에 숨어있다. 거국내각은 사실상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전면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후퇴’의 방식으로는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등의 ‘정치적 선언’을 통해 국정운영의 권한을 여야가 합의한 총리에게 위임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위임의 범위도 쟁점이다. 일각에선 외교·안보 분야는 대통령이, 정치·사회·경제 등 내치는 책임총리가 전담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일종의 ‘이원집정부제’ 모델이다. 문제는 사실상의 ‘정치적 탄핵’을 당한 대통령 처지에선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느냐다. 한국처럼 외교·안보 사안이 국내정치와 긴밀히 연동된 국가에서 내치·외치의 영역을 ‘무 자르듯’ 나누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형식적인 국가원수의 지위만 유지하고 외교·안보를 포함한 국정운영의 전권을 행정 수반인 총리에게 위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여전히 키는 대통령 손에
하지만 거국내각 출범의 최종적 열쇠를 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현행 헌법상 ‘탄핵’이 아닌 방법으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중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성정상 여야가 정치적 합의를 이루더라도 순순히 거국내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변수는 여론의 동향과 보수진영 내부의 압력이다.
현재로선 여당보다 야당 쪽 기류에서 상대적 여유가 느껴진다. 연일 거국내각 제안을 수용하라는 여당의 공세에도 야당은 사건의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이 우선이라며 버티고 있다. 여기엔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한자릿수까지 급락한 상황에서, 민심이반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 대통령과 여당도 자기 카드만 고집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현실적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촛불시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궁지에 몰려야 해법이 나온다”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31일 발언도 이런 맥락이다. 오는 주말과 다음 주말 서울 도심에선 연이어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관련영상] ‘최순실 쓰나미’, #박근혜 수사는? /더정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