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박계 최고위원인 강석호 의원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정현 대표(오른쪽)를 향해 당의 인적 쇄신을 요구하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새누리당이 붕괴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친박계가 장악한 지도부가 사퇴 요구를 거부하며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민심 이반이 심해지자, 비박계는 7일 박근혜 대통령 탈당까지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날 박 대통령 탈당을 공식적으로 촉구한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금기시해온 ‘대통령의 탈당’이 공론화됐다. 참아왔던 마지노선을 넘은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김 전 대표는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며 국정을 운영했다”고 박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 “선당후사 정신으로 당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당적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당의 지지기반인 보수의 궤멸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특히 “헌법 가치를 위반한 대통령은 탄핵의 길로 가는 게 헌법정신이지만,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거국중립내각 구성으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탄핵감’이라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김 전 대표는 지난 주말 동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각각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표는 여당이 대통령 탈당 등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사태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를 이정현 대표에게 전달했지만 이 대표가 변화를 보이지 않자, 이날 전격적으로 입장 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당내 비박계의 좌장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그의 이날 선언은 ‘박 대통령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상당수 당내 구성원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지도부도 공식 사퇴만 안 했을 뿐, 사실상 당내에서 심리적으로 ‘탄핵’된 상태다. 최고위원단에서 유일한 비박계인 강석호 최고위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4일 지도부 사퇴를 건의한 뒤 주말에 어느 누구도 내게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오늘부로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 지도부는 새로운 인물로 구성을 해서, 당의 쇄신, 심지어는 당명과 당 로고까지 바꾸는, 뼈를 깎는 혁신적 작업을 해야 한다”며 “앞으로 비박계 중진 모임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앞서 당 지도부 동반 사퇴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예산안 처리 및 거국내각 구성’ 뒤 사퇴하겠다고 밝힌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날부터 최고위원회의 출석을 거부했다. 비박계인 나경원 인재영입위원장과 이상휘 원외대변인도 8일 당직을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최연혜·유창수 최고위원 등 나머지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사퇴 거부’ 뜻을 재확인했다. 이정현 대표는 “어차피 당은 폭탄 맞은 집이고, 둑에 금이 간 저수지 같은 상태다. 급하게 비대위를 꾸린다고 리모델링이 안 된다. (당이) 기왕 이렇게 된 거 (지도부 교체를) 서두르지 말자”고 말했다. 친박계 지도부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이들을 끌어내릴 방법은 없다. 그래서 비박계는 매일 회동하면서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황영철 의원 등 비박계 중진 의원들은 이날 아침에도 국회에서 회동한 뒤 “국정파탄 책임을 지는 당내 인사들은 당에서 2선 후퇴를 포함해 정계은퇴 등 국민 앞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당 지도부 사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각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단의 대책에 대해 “우리 차원에서라도 따로 당 지도부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당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들을 구체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탈당이나 2선 후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당 친박 지도부도 ‘버티기’를 이어간다면 의원들의 탈당이나 분당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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