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당선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이 트럼프를 자극하는 막말일까?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이 10일 내놓은 현안 관련 브리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당선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며 ‘야당이 관리하겠다’는 언급까지 했다. 이 또한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자극하고 불안을 부추기는 용납될 수 없는 막말이다. 야당의 인식과 수준으로 무슨 관리를 하겠다는 건지 참담할 뿐이다.”
한국 정부는 물론 세계 많은 나라가 예상을 뒤엎은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고,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불안하게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인데, 이를 ‘당선인을 자극한다’는 표현으로 야당을 공격한 것이다. 앞서 우상호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지난 9월 국회의장·여야 원내대표의 미국 방문 때 공화당 의원들과 나눴던 얘기를 전하며 “미 대선 결과로 국민들이 과도하게 불안 느끼지 않는게 좋겠다. 불안 증폭 안되도록 관리하는 일에 야당도 같이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 대변인의 논리대로라면 이날 새누리당 주요 지도부 인사들이 내놓은 발언들 역시 트럼프 당선인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들이 많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티타임에서 “최순실 내우에, 트럼프 외환까지 겹쳤다”고 말했다. 염동열 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세계인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미국발 이상기류가 돌풍으로 변해 외교·경제·안보에 언제 쓰나미가 몰려올지 모르는 다급한 시기”라고 규정했다. 친박근혜계 이장우 최고위원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통해 우리 대한민국의 불확실성이 굉장히 커졌다. 안보 분야, 경제 분야에서 굉장히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조차 트럼프 당선을 ‘외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도, 민 대변인은 상대 당 원내대표가 같은 취지로 한 발언만 문제 삼은 것이다. 사실 민 대변인의 이날 브리핑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오전 당 정책조정회의 때 “트럼프 당선자가 대선 선거운동을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며 선거에 이용했던 것을 저희는 잘 기억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윤 의장이 잘못된 사실관계를 인용해 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겨냥해 그는 “자국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당선인까지 끌어들여 허위 사실 공세를 하는 것은, 자칫 외교적 논란까지 일으킬 수 있는 절대 있어선 안 될 매우 부적절한 태도”라고 날을 세웠다. 윤 의장은 이날 오후 잘못된 발언을 인정하고 이를 정정했다. 민 대변인의 브리핑은 윤 의장의 발언만 정조준해야 했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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