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떠넘기는 내용의 3차 담화를 발표한 직후,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었다. 의총은 ‘탄핵 중단’을 주장하는 친박계와 ‘계속 추진’을 주장하는 비박계가 팽팽하게 맞서, 당론을 정하지는 못한 채 4시간 반 만에 끝났다. 눈에 띈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숨죽이고 있던 친박계가 공세적으로 나선 점이다.
의총 첫 발언자는 그동안 좀처럼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았던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이었다. 그는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 결단을 국정 안정과 국가 발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야권과 폭넓게 의견을 모아 정권 이양의 질서를 만드는 게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분위기를 잡았다. 탄핵안 통과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내던진 대통령의 무책임한 제안을 ‘질서있는 퇴진 결단’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서 의원은 “야권에서 거국내각 총리를 협의해 추천하고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다음 지침을 제시하는가 하면, “야당도 대승적 견지에서 대통령의 결단을 판단해주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들이 저항할 것”이라는 ‘훈수’까지 뒀다. 이어 친박계 초·재선 의원들도 발언에 나서 동일한 주장을 폈다. 비박계도 반격에 나섰지만 숫자에서는 열세였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전날 친박계의 ‘질서있는 퇴진’ 건의와 그에 따른 대통령 대국민 담화, 이후 당내 친박계의 대대적 반격 등이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의 핵심인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도 동시에 움직였다. 이정현 대표는 “이제 국회가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 야당이 정치적 조급함, 성급함, 욕심을 갖기에 앞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몇 차례 탄핵 속도 조절론을 내세운 바 있는 정 원내대표도 “대통령의 담화는 사실상의 하야 선언”이라며 “상황 변화가 생긴 만큼 두 야당과 탄핵 절차 진행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선언했다. 정 원내대표는 다만 의총을 마친 뒤에는 기자들에게 “탄핵이라는 카드를 버리지는 않았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 야당과 계속 협상해 봐야겠다. 협상하는 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다음 수순은 탄핵 국면을 개헌 공방 국면으로 바꾸는 것이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로 비주류를 흔들어 탄핵 부결 또는 중단을 끌어낸 다음, 여야는 물론 당내에서도 합의가 쉽지 않은 개헌 국면을 이어가며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날 친박계 인사들은 일제히 “대통령의 퇴진을 현실화하려면 임기를 당기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개헌=퇴진’이라는 점을 못 박았다. 서청원 의원은 “그동안 200명 넘는 의원들이 개헌하자고 했으니까, 빠른 시일 내에 (개헌) 일정이 잡히면 대통령은 언제든 그만두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12월 중 개헌특위 설치 등 개헌 로드맵 작성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개헌이 이뤄지면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질서있는 조기 퇴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우택 의원은 “여야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분권형 개헌까지 추진해서 안정적인 대선 준비까지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의원 등이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이날 승부수가 새누리당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내 비주류의 한 중진 의원은 “여론이 무서워 탄핵을 향해 달려가던 새누리당이 25일 만에 입을 연 대통령의 담화를 제대로 뜯어보지도 않고 친박들이 집단적으로 궤도를 수정하려고 한다. 결국 새누리당은 ‘친박당’이라는 점만 부각될 것”이라고 짚었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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