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면담을 마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맨앞)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동안 김 전 대표가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11월13일)
“대통령이 내년 4월말 퇴임한다면 굳이 탄핵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12월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온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결국 물러섰다. 박 대통령과 맞서다 30시간 안에 꼬리를 내린다고 해서 붙여진 ‘30시간의 법칙’이 재연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전 대표는 1일 자신의 입장 변화에 대해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그만두지 않는다고 했을 때 탄핵을 해야지, 그만둔다고 했는데 탄핵하자는 건 안된다. 대선을 준비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광장에 모인 시민은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데 4월말 퇴진은 민심을 거스르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국민적 분노를 헌법적 질서 안으로 수렴해야 한다”면서 탄핵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4월 퇴진’이라면 국민 분노가 잠재워질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김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에도 여러 차례 박 대통령과 맞서는 모양새를 취하다 번번이 물러섰다. 2014년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청와대가 반발하자 톤을 낮췄다. 2015년 야당과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에 합의했다가 청와대 반발로 철회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낼 때도 결국 의원총회를 열어 유 원내대표 사퇴 길을 만들며 청와대와 극한대립을 피했다.
지난 사례들은 박 대통령과 갈등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의 성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그가 입장을 바꾼 것은 향후 대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심이 분노하는 상황에서 당내 주류인 친박계가 대통령 두둔에만 급급하자 탄핵이라는 대안을 선택했지만, 대통령이 물러나겠다는 마당에 탄핵을 고집한다면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탄핵으로 심판받은 상황에서 곧바로 대선을 치르면 야당에 꼼짝없이 정권을 내줄 수 있다는 불안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김 전 대표가 이번 사태에서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를 규합해 어떤 역할을 해보려 했기 때문에 대선 불출마도 결심했다. 탄핵을 요구하는 야당과 개헌을 주고받으면서 거래를 하려 했다가 대통령이 자진사퇴 방안을 던져 상황이 바뀌자 그에 올라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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