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앞에서 여섯째)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투표하려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드러난 국회의원들의 표심은 민심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향후 다가올 한국사회의 격변을 예고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집권여당 의원의 절반이 더는 박 대통령의 ‘통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만큼, 어떤 형태로든 박 대통령의 임기(2018년 2월24일) 전 ‘조기 사퇴’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299명(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1인 불참)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234명이다. 여야 모두 “압도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애초 예상보다는 많은 찬성표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친박계가 똘똘 뭉쳐 막판 뒤집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이들의 견해를 따라 반대표를 던진 이들은 56표에 불과했다. 한때 9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던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1~3차 담화가 나오면서 점차 쪼그라들었고, 민심에 거스르는 친박 핵심들의 버티기가 계속되면서 결국 40명 가까운 이탈을 자초했다.
■ 예상보다 더 나왔다…정치권 안도 투표 하루 전인 8일까지도 여야는 대체로 이번 탄핵소추안이 220표 안팎에서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야당과 무소속을 합친 172명 가운데 이탈자가 없을 것으로 보고, 새누리당 비박근혜계가 주도하는 비상시국위원회의 취지에 찬성하는 이들이 35명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 둘을 합치면 확실한 찬성표가 207명이고, 나머지 고민 중인 의원들 중 10여명 정도는 민심을 의식해 찬성 대열에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치를 더한 것이었다.
의원들을 상대로 한 선거 경험이 많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조차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왔다”고 털어놓은 점도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비박계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격인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도 “저희 비상시국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친박계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였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비박계가 투표 전날까지 “탄핵소추안 내용에 ‘세월호 7시간’이 포함되면 이탈표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내용도 결국 기우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 친박계 의원은 “압도적 가결이 필요했던 비박계로선 최선을 다한다는 차원이지만, ‘7시간’이 포함돼 반대했다는 의원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200표를 겨우 넘기거나 220표 안팎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을 때 국회로 쏟아질 비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친박계의 탄탄한 세력이 확인되면 정치권의 쇄신 자체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이유로 이번 표결 결과를 접한 정치권은 친박계를 제외하면 대체로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 친박계 30명 이상 이탈…당내 여론 파악도 못한 친박 주류 친박계 핵심들은 투표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200표가 약간 넘는 찬성표를 예상하며, “마지막까지 10명 정도만 더 설득하면 부결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친박계 핵심 홍문종 의원은 이날 아침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나와 “(찬성으로 분류된) 35표 중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15표를 제외한 나머지 표들은 아직도 고뇌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결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친박계의 참담한 몰락이었다. 주류 친박 핵심들이 당내 여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표결 결과로만 보면, 확실한 비박계 35명을 제외한 새누리당 의원 93명 가운데 기권(2표)과 무효(7표)를 포함하면 39명이나 친박에 등을 돌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비박계 35명과 합치면 74명으로 당내 세력 판도가 바뀔 만한 수치가 된다. 정치권 안팎에서 언급됐던 이른바 ‘샤이 탄핵파’가 친박계 내에도 상당수 존재했던 점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무효표 중엔 찬성을 뜻하는 ‘가’라는 글자를 쓰지 않고 ‘가’에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가’ 옆에 점을 찍어 무효로 분류된 표도 있었다고 한다.
■ 친박으로 분류됐던 비례초선·재선·수도권 의원들이 가세 새누리당 내에선 친박계의 대거 이탈이 비례대표 초선 일부와 재선그룹, 그리고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초선 비례대표의 경우 지역 민심이 아닌 전체 민심을 볼 수밖에 없는데, 표결이 가까워져 오면서 김현아·신보라·김종석·강효상 의원 등 하나 둘씩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친박으로 분류됐던 강효상 의원은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어 “보수의 입장에서도 오늘은 새로 태어나는 날이 되어야 한다”며 탄핵안 처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수도권 의원들 역시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 출신 의원들에 비해 탄핵 반대 민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탄핵 찬성을 촉구하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도 이들이 가장 많이 받았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들의 지역구도 공교롭게 경기도가 7명으로 가장 많고, 대도시인 서울과 부산이 각각 5명과 4명으로 그 다음이다.
지금껏 친박계로 분류됐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날 표결 전 <한겨레>와 통화에서 “계파를 떠나 국회의원이라면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계의 규모도 크지 않다”면서 “오늘 탄핵을 기점으로 친박-비박 분류가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도 “민심에 역행하는 강경 발언을 하는 일부 의원들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데, 오히려 그런 발언이 그들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태도가 역풍을 불러, 촛불을 되레 키웠다는 설명이다.
석진환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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