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몸집을 키운 비박근혜계와, 버티기에 나선 친박근혜계의 주도권 다툼이 가시화하고 있다. 친박계 지도부 해체 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거쳐 당 혁신으로 이어질지, 대규모 탈당을 통한 분당 사태가 현실화할지 주목된다.
탄핵안 가결을 주도한 비박계는 11일 핵심 친박계의 탈당을 공식 요구했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성명서를 내어 “대통령을 바르게 보필하지 못하고 당을 특정인의 사당으로 만들고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범죄의 방패막이가 됐던 이들은 스스로 당을 떠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원외 인사들 중심의 선도적인 집단 탈당 의견도 있었지만 친박 핵심들이 당을 떠나는 게 맞다는 목소리가 더욱 강했다고 참석 인사들이 밝혔다. 다만 비상시국위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지도부 퇴진과 인적 청산 문제와 관련한 당 지도부의) 답변이 안나오면 단호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며 ‘단호한 길이 탈당이냐’는 물음에 “그런 말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당 지도부 전원의 즉각 사퇴를 또다시 요구했다.
친박계는 탄핵 표결 이후 수세에 몰렸으나 순순히 물러설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80명이 넘는다”던 친박계는 지난 9일 탄핵안 표결 과정에서 20명 가까이가 이탈했음이 확인됐다. 탄핵안 표결에서 확인된 ‘절대 친박’은 반대표(56명)와 불참(최경환 의원 1명)까지 쳐서 57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친박계는 강성 핵심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박계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탄핵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당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버티고 있다. 친박계는 탄핵을 주도한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을 ‘배신자’로 규정하며 세를 모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 핵심 20여명은 탄핵안 가결 당일 만찬 회동을 갖고 지도부 즉각 사퇴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친박이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친박계 이탈이 가시화된 판에 당까지 내주면 이제 폐족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인식 아래 이정현 대표가 물러난 뒤에라도 비대위원장을 친박계 인사로 앉히는 등 최대한 당권을 방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비박계의 비상시국위에 맞서는 차원에서 친박계 주도로 ‘구당 모임’까지 구성하기로 했다.
계파간 갈등은 일단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놓고 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 구성을 주도하려는 비박계에선 비대위원장 유력후보로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거론하고 있지만, 친박 핵심들은 반대 뜻이 강경하다. 이정현 대표가 지난 9일 정진석 원내대표를 향해 ‘동반사퇴’를 언급했지만 정 원내대표는 11일 “의원들 뜻에 따르겠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만약 이정현 대표가 물러나고 비대위가 구성되면 정진석 원내대표가 당 대표 대행을 맡아 비대위를 의결할 전국위원회를 소집하게 된다. 정 원내대표는 4·13총선 패배 이후 강성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임명해 친박들의 집단 반발을 산 ‘전력’이 있다. 비박계가 당권을 완전히 장악할 것이 예견되는 경우엔 이 대표가 사퇴를 안하고 버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용태 의원을 비롯해 정두언·정문헌·박준선·정태근 등 전·현직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탈당파 모임을 열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모임에 참석한 정태근 전 의원은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는 “극우집단”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비박계를 이끄는 김무성·유승민 의원에 대해선 “박근혜 권력의 피해자라는 것으로 면책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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