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13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주 미달로 무산되자 정우택 원내대표(맨 왼쪽부터), 박맹우 사무총장, 안상수 상임전국위 임시 위원장과 함께 대책을 논의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보수를 살리겠다”며 기세 좋게 입성했던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본격적인 당 쇄신에 나서보지도 못하고 시작부터 ‘쓴잔’을 마셨다. 전권을 부여받은 비대위원장임에도 6일 예정됐던 상임전국위원회 무산으로 비대위 구성조차 못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인 위원장의 실패는 일차적으로 8선의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을 넘어서지 못한 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 위원장이 그동안 민심과 동떨어진 당의 ‘패거리 정치’가 어디까지 곪아 있었는지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인 위원장은 상임전국위 무산 직후 “나라를 망친 패거리 정치의 민낯이 어떤가를 국민 여러분들에게 낱낱이 보여주는 사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지만, 이미 정치적 타격을 입은 그에게 현 상황을 돌파할 뚜렷한 카드는 없어 보인다. 친박 핵심들은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하고, 자신이 의지했던 여론도 이제 새누리당의 내부 쇄신 자체에 냉소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인 위원장은 자신이 예고했던 대로 오는 8일 거취를 표명할 전망이다. 선택지는 ‘사퇴’를 하거나, 자존심을 버리고 비대위 구성을 재시도하는 두 가지다. 인 위원장은 그동안 “나는 잃을 게 없다”며 언제든 비대위원장직을 던지겠다고 공언해왔다. 인 위원장 스스로 자존심이 굉장히 센 데다, 이번 사태로 가족 등 주변의 사퇴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어 실제 그가 사퇴를 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인 위원장 주변의 한 인사는 “인 목사가 처음부터 ‘새누리당에 조문왔다’고 하지 않았나. 구상했던 것들이 조금이라도 막히면 언제든 떠날 사람”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인 위원장의 당 쇄신에 힘을 실었던 이들은 마지막까지 그를 붙들고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는 “인 위원장이 떠나면 (나도) 다 떠나는 것”이라고 배수진을 치고 있고, 당내 다수 의원도 그가 사퇴하면 당이 회복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란 위기감을 갖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인 위원장이 잔류 요구를 받아들이면 당은 ‘몇몇 친박’과 이를 제외한 ‘비대위파’로 분리될 것”이라며 “이번 무산 사태로 인 위원장의 당 장악력이 점차 커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인 위원장도 이날 참석한 상임전국위원들에게 “오늘 사태를 깊이 숙고해 의견을 말씀드릴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면서도 “당을 잘 추슬러 당 개혁과 당 세우는 일에 앞장서겠다. 도와달라, 함께 해달라”고 여지를 남겨뒀다.
인 위원장이 잔류를 택하면 곧바로 당은 비대위원장 권한으로 상임전국위원 구성을 바꿔 다시 비대위 구성을 시도하며 ‘2라운드’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인 위원장이 친박 중진들에게 탈당계를 제출받았지만 이를 되돌려줄 가능성이 있어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정치쇼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그가 새누리 쇄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 또 그에 맞는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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