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발표문 만든 뒤 정당 돌아
오전까지 “제가 대통합 도모” 의지
오후 3시 갑자기 불출마 회견 잡아
반, 불출마 회견 뒤 참모들 만나
“보수 소모품 되란 말 수용 못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를 찾아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를 찾아 정병국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맨오른쪽부터 유승민 의원, 주호영 원내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던 시각,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서는 ‘캠프 사무실’을 차리기 위한 사무실 공사가 한창이었다. 랜선을 깔아 기자실을 준비하고, 실내 인테리어도 틀을 갖춰가는 중이었다. 그만큼 갑작스럽고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불출마 선언이었다.
애초 반 전 총장은 11명의 실무팀이 이용하던 마포의 사무실을 3일부터 여의도로 옮길 계획이었다. 불출마 선언을 한 1일 오전에는 여의도 대하빌딩 5층에 약 200평 규모의 사무실 계약까지 완료한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본격적인 대선 캠프가 구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기자회견이 진행된 국회 정론관에서도 그의 돌발적인 불출마 선언 발언이 나온 직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취재진도 당황했으며, 기자회견을 마치고 반 전 총장이 탄 승용차는 사진기자들 사이에 가로막혀 10여분간 움직이지 못했다.
이날 하루 반 전 총장의 행보도 미스터리하긴 마찬가지였다. 불출마 선언을 염두에 둔 행보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이날 오전 새누리당을 예방해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고, 바른정당을 찾아 정병국 대표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협치·분권을 통해 온 국민의 걱정거리를 해소해야 한다. 제가 국민의 대통합과 화해 이런 걸 도모해야겠다”며 대권 도전 의지를 분명히 한 바 있다. 불출마 선언 직전인 이날 오후 3시에도 반 전 총장은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만나며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했다. 심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저랑 헤어지자마자 불출마 회견을 해서 매우 당혹스럽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이도운 대변인은 “실무진은 대부분 오후 3시 반 기자회견을 할 때 (대선 불출마) 사실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회견 뒤 마포 사무실에서 참모들과 만나 “오늘 새벽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발표문을 만들었다”며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여러분과 미리 상의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아마 한 사람이라도 상의를 했다면 뜯어말렸을 것이 분명하다. 한발 더 디디면 헤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이해를 구했다.
그는 귀국 뒤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며 느꼈던 불편한 심정도 참모들에게 털어놨다. 특히 그동안 접촉했던 보수 진영 인사들에게서 벽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정치인들의 눈에서 사람을 미워하는 게 보이고 자꾸만 사람을 가르려고 하더라.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며 “말하자면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수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나는 보수이지만 내 양심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은 캠프 실무진에게 “여러분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겠다. 제일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게 여러분이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다.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좌절하면서도 그분들 때문에 버틴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일부 참모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3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