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불출마 뒤 긴급 여론조사에선
황교안으로 가장 많이 이동
전문가들 “장기적으로 안철수가 수혜자”
대선 ‘야-야 대결’ 가능성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1일 오후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선행 실천 격려 간담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그를 지지했던 표심이 누구에게로 옮겨갈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밤 나온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반사이익을 가장 크게 얻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반 전 총장 표심이 여야 주자들에게 고루 흩어지는 양상이어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반 전 총장 지지층은 이념은 보수, 연령대는 50~60대, 지역은 충청과 대구·경북으로 요약된다. 지난 23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 전 총장은 보수층(41.1%)과 60대 이상(37.8%), 50대(25.8%), 대구·경북(28.8%), 충청(21.9%)에서 자신의 전국 평균 지지율(19.8%)을 웃도는 지지를 얻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하지만 반 전 총장 지지층의 결속력이 강하다기보다는 여러 계층이 다른 이유로 뭉쳤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새누리당이 유력한 대선 후보를 낼 수 없는 처지에서 보수 표심이 반 전 총장으로 모였고, ‘충청대망론’에 기댄 지역 표심도 있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반대하는 일부 중도층 표도 포함돼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비문재인’으로 수렴된다. 결국 반 전 총장으로 쏠렸던 표심은 ‘비문 연대’의 구심점이 될 만한 후보에게 이동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반 전 총장에게 모여 있던 표심이 흩어지면서 지지도가 뒤바뀌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날 <제이티비시> 의뢰로 리얼미터가 긴급히 실시한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전 대표(26.1%)에 이어 황교안 권한대행이 12.1%로 뒤를 이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1.1%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9.3%)를 누르고 3위로 올라섰다. 이 조사에서 반 전 총장 지지층을 가장 많이 흡수한 이는 황 권한대행으로 나타났다. 반 전 총장 지지층의 24.7%가 황 권한대행으로 이동했다. 이어 문재인 전 대표가 11.4%를 가져갔고,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10.3%),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9.3%), 안희정 충남지사(7.5%)도 일정 부분 흡수했다. 그런데 ‘유보층’도 20.3%로 나타났다. 반 전 총장 불출마의 반사이익을 황교안 권한대행이 가장 많이 얻은 셈이지만 상당 부분은 당장 마음을 못 정했으며, 여권·야권을 가리지 않고 표심이 두루 분산된 모습이다.
황 권한대행은 여권 주자 1위로서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이지만, 대통령 탄핵심판 국면에서 국정을 총괄하고 있는 그가 실제로 출마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정권심판’ 프레임이 강한 이번 대선에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 나서는 것을 민심이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김형준 교수는 “(반 전 총장 불출마는) 보수가 붕괴된 것이다. 황 권한대행이 대안으로 나서는 건 정진석 새누리당 의원이 ‘미친 짓’이라고 했듯이 임팩트가 없다”고 말했다.
‘보수 적통’을 강조해온 또 다른 여권 후보인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도 일정 부분 지지율이 올라가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될 사람’에게 표심이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극복하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의 안희정 지사도 반 전 총장이 가졌던 충청 표심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으며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전체 구도를 봤을 때 장기적으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최근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추락한 이유는 반 전 총장 지지층과 중첩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50대 중도성향 표심이 안철수에게 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반 전 총장이 빠진 자리에 안철수 전 대표가 제3지대 빅텐트의 주축으로서 흡인력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결국 야권 주자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누가 보수의 구심점이 된다 해도 반 전 총장만큼 지지율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누가 되든 파괴력 없는 약체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3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