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9일 오전 서울 도렴동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는 고요한데 왜 주변에선 회오리 바람인지 모르겠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9일 이런 농담을 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가만히 있는데 정치권은 연일 황 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현실을 가리킨 것이다. 이날도 야당은 아침부터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황 대행이 출석해서 대선 출마 여부를 밝혀야 한다. 출석하지 않으면 대정부질문 자체를 보이콧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황 대행은 즉답을 하지 않다가, 이날 저녁에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강원 평창을 방문 중인 황 대행에게 전화해 정부-국회 협력 차원에서 출석을 요청해 황 대행이 수용했다고 한다. 10일 오후 열리는 대정부질문에서는 황 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를 추궁하는 야당과, ‘지금은 국정에 전념할 때’라는 기조를 이어온 황 대행이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3월초 이전에 내려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 퇴장 이후 ‘보수 대안’으로 떠오른 황 대행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잇따른 지지도 상승세다. MBN-매일경제 의뢰로 리얼미터가 6~8일 조사해 9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황 대행은 15.9% 지지율을 얻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33.2%)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황 대행은 지난주보다 3.5%포인트 올랐고, 오차범위 내에서 안희정 충남지사(15.7%)를 앞질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황 대행 본인은 대선 출마 여부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거취를 밝히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둬 자신의 몸값과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황 대행은 말 대신 행동으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매일 2~5건씩 공개행사를 하고, 장애인시설·창조경제혁신센터·스마트공장 등 전국 각지를 돌며 경제·복지·민생 등 분야별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는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야당은 “대권놀음을 중단하고 구제역 확산 방지에 집중하라”고 비판한다.
황 대행이 ‘침묵’을 유지하며 15% 안팎의 지지도를 흡수하는 사이, 새누리당은 황 대행을 띄우며 그와 함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새누리당이 의도적으로 황 대행을 부각시켜서 보수 결집의 축으로 활용하고, 황 대행과 동반해 새누리당의 활로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새누리당에서 공개적으로 “탄핵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붕괴됐던 보수층이 ‘태극기 집회’ 등을 통해 재결집하고 나서는 데 황 대행의 존재가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출마 여부조차 불투명한 황 대행이 ‘보수 주자 지지율 1위’라는 지위를 갖고 ‘돌덩이’처럼 버티는 게 장기적으로 보수진영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황 대행이 저렇게 하다가 출마하지 않으면 유승민·남경필 등 다른 보수 정당 후보들만 오랫동안 누르고 있는 결과를 낳는다. 황 대행이 보수 진영에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대행이 새로운 ‘보수 대안’이 부상할 기회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황 대행의 지지율에도 불안 요소가 깔려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유력한 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싫어하는 표심이 반영된 것인데, 상식적으로 황교안 대행은 출마할 수 없는 사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또 다른 권한대행을 두고 출마하는 것과 국정농단 책임론이라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정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다른 후보들과 달리 본격적인 검증 대상에서 빠져있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본격적인 검증 무대에 오르는 순간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경미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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