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은 괴롭다.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을 위한 특검법 개정안 처리에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완강하자,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결단해야 한다는 야권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오전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직권상정이 불가피해졌다”며 정 의장의 결단을 촉구한 데 이어,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국회에서 특검법안을 직권상정해서라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정 의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집단지성이 필요한 시기에 어느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며 난감한 심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직권상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허허. 그런데 나한테 그럴 권한이 있나?”
지금 특검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이 국회선진화법이 규정한 요건을 충족시키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선진화법은 직권상정의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야당에선 ‘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그런가? 국민이 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또 모르겠다.”
국회의 법안 처리는 각 단계마다 여야의 합의를 거치는 게 관행이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본회의 표결을 위해선 소관 상임위 여야 간사나 원내지도부 간 합의를 거쳐 본회의 상정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합의 단계를 건너뛸 때 ‘날치기’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정세균 의장이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지난해 9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을 밀어붙여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독재자’, ‘의회민주주의 파괴자’란 비난을 들었던 터라 더 조심스럽다. 정 의장은 통화 말미 조심스럽게 속내를 내비쳤다.
-4당 간 합의가 꼭 필요하다는 뜻인가?
“합의가 안 되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야지. 지금은 탄핵 문제도 있고, 조기대선도 있고, 여러 고려할 사항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법사위에서 표결 처리해 가져오면 내가 본회의 상정을 안 해줄 이유가 없다.”
법사위에서 특검법 개정안을 처리해 본회의에 보고하면 여야 교섭단체들이 모두 합의하지 않더라도 본회의 표결에 부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상황이 정 의장의 희망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날치기’ 책임을 떠안기 부담스러운 건 바른정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도 매한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권 위원장 역시 “여야가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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