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처음 열린 자유한국당의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자유한국당 친박근혜계 일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불복 의사에 동조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탄핵 결정에 승복하자는 당 지도부 및 당내 ‘탄핵 찬성파’와의 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2차 분열’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 결정은 법리를 무시한 정치 판결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애국 시민을 흥분시켜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 시위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까지 헌재 결정 탓으로 돌리며 헌재를 맹비난한 것이다. 김 의원은 또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 자택으로 갔기 때문에 이미 승복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서도 “민간인 박근혜 수사는 대선 이후로 연기하도록 법무부에 지시하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을 포함해 서청원·최경환·박대출·민경욱 의원 등은 자택으로 돌아간 박 전 대통령 보좌를 자처하고 있다.
‘헌재 결정 승복’을 당론으로 정한 지도부는 헌재 결정을 부정하는 듯한 친박계의 이같은 움직임에 난처한 입장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친박계 의원들이 전날 서울 삼성동으로 몰려가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하며 격려와 감사를 주고받은 데 대해 “인간적 관계에서 하는 것인데 뭐라 하겠나. 예전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때도 그랬다”면서 “우리 (탄핵 승복) 당론과 반해서 가겠다는 의미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친박계의 행동 수위가 높아질 경우 당내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 회의에서 “국민 마음에 걱정을 끼치고 국민 화합을 저해하는 언행을 한다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당도 불가피하게 단호한 조치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며 친박계를 향해 경고성 발언을 했다.
국회 의석 94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은 ‘골수 친박’으로 불리는 이들이 10여명이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각하해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한 의원이 61명에 이르는 등 범친박계가 다수를 이룬다. 반면,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때 찬성한 중도파 및 일부 비박계가 30여명이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대한 태도와 대응을 놓고 이같은 자유한국당 내의 성향 분포가 좀더 선명해지고 있다. 강성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이나 탄핵반대 ‘아스팔트 보수’와 호흡을 맞춰갈 경우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단호한 대처로 맞서면서 당이 분란에 휘말릴 수 있다. 인 위원장이 ‘2차 친박 청산’에 나서거나, 당내 중도파가 ‘친박당’을 탈당하는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다. 더구나, 당 밖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의원 등 ‘제3지대’ 구축 세력이 자유한국당 내 중도파를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등과 만난 바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2차 탈당 물결이 당장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당 바깥에 뚜렷한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김종인 전 의원이 바른정당과 힘을 모으고 민주당 내 김 전 의원 측근 의원들이 동참해 보수를 재건하겠다고 하면 얘기가 되는데, 지금은 깃발을 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가능성은 낮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 여부도 이들의 진로에 변수가 된다. 보수층의 높은 지지를 받는 황 대행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다면 당내 비박계도 탈당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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