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이 31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31일 새벽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담한 뒷모습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도 매우 긴 여파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대표했던 ‘보수세력’은 갈가리 찢기고 위축됐고, 그의 구속수감은 보수 집권 10년의 종말을 상징한다. 그가 보수층에 남긴 상처가 회복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어쩌면 예전과 같은 수준의 세력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보수는 어디로 갈까? 이념보다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기득권으로 뭉쳤던 보수는 당분간 ‘결집’을 이뤄낼 명분도 없고, 동력도 부족하다는 게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끌어모을 확실한 리더십이 없다. 이번 대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까지 허허벌판에서 삭풍을 마주할 수도 있다.
보수 재결집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도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을 따르는 10% 안팎의 ‘아스팔트 보수’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유치장 안의 박 전 대통령이 유치장 바깥의 보수 재건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티케이(대구·경북) 지역, 60대 이상의 인구가 많은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그림자를 지우는 방식의 보수 재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확장성은 없지만, 대구·경북 지역과 60대 이상의 지지율 버팀목이 그만큼 견고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수 재건의 양대 축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보수층 전반에 걸친 확실한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홍준표, 유승민 후보가 마주한 과제이기도 하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박근혜를 완벽히 청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합리적 보수, 중도보수가 죄다 안철수, 안희정으로 떠났다. 이러다 영영 집권이 가능할 정도의 보수재결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현 상황에서 보수 재건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되는 당일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경남지사라고 할 수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보수정치세력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으로 이어졌던 정치적 자산과 고정 지지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홍 지지가 자유한국당 내부의 친박 세력을 도려내고 바른정당과 통합을 모색하는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년 예정된 지방선거 전에는 이를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정치세력의 운명이 뜻하지 않는 외부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07년엔 당시 대선이 사실상 ‘이명박-박근혜’의 대결이었을 만큼 민주당이 몰락했고, 지금의 보수 정당처럼 분명한 리더십조차 없었다. 이후 민주당의 재기는 ‘자강’ 노력이라기보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정국과 이듬해 벌어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이 계기가 됐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귀영 여론과데이터센터장은 “당분간 보수가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지만, 차기 정부가 실수나 빌미 제공을 하며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과 보수 재건의 기회를 만들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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