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노동시간단축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14일 입당한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9일 대선후보 2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겨냥한 홍준표·유승민 후보의 색깔 공세에 “국민이 실망할 것”이라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토론회가 끝난 뒤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호평’ 일색인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20일 여의도 정의당사에 욕설과 고성이 섞인 항의전화가 쇄도하고, 소속 의원들의 의원회관 사무실에도 오전부터 심 후보를 비난하는 전화가 빗발친 것이다. 토론 도중 심 후보가 문 후보의 복지정책 후퇴와 사드배치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집요하게 비판한 게 화근이었다.
정의당의 한 비례대표 초선의원은 “대부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로부터 온 전화였다. ‘어떻게 문 후보에게 그럴 수 있느냐’는 점잖은 항의도 있었지만, ‘문재인 떨어뜨리려고 출마했느냐’ ‘꼴도 보기 싫다’는 감정적 반응 일색이었다”고 전했다. 정의당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도 이날 새벽부터 비난성 항의글이 폭주했다. 이혁재 사무총장이 페이스북에 “심상정 후보가 벼르고 벼른 정책과 선명한 입장으로 1위 후보를 비판하는 게 잘못인가. 정의당이 아니라 민주당에 전화해서 왜 그렇게 정책적 뒷받침이 허약한지, 사드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지 항의하시길 바란다”고 자제를 호소했지만, 타오르는 장작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돼버렸다. 당원 게시판에 문재인 후보에 대한 심 후보와 당의 태도를 비판하며 탈당하겠다는 글이 쇄도하면서 탈당하겠다는 당원과 이들을 비판하는 당원들의 반박글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정의당이 이번과 같은 안팎의 시련에 맞닥뜨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말 심상정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 도입을 위해 안철수 후보와 협력하겠다고 밝힌 직후에도 문 후보 지지자들의 비난과 당내 친문 성향 당원들의 탈당 압박에 시달렸다. 당 관계자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 대선에서 5% 이상 득표해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초유의 ‘야-야 양강’ 구도가 펼쳐지면서 선거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안팎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탓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당내에서도 애초 계획대로 민주당 후보와 차별성을 부각하면서 진보정당의 안정적 토대를 구축하자는 의견과, 친민주당 성향 잠재 지지층을 의식해 안철수 후보 비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대선 1년 뒤 치를 지방선거를 생각하면 ‘잠재적 우군’인 진보성향의 친민주당 유권자들과 관계 악화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의당의 이런 상황은 옛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던 ‘독자완주파’와 ‘(제1야당) 비판적 지지파’ 사이의 갈등과 유사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 ‘비판적 지지파’의 다수였던 자주파(NL계열)을 대신해 ‘친노무현’ 성향의 참여계와 입당 경력이 짧은 신규 유입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파’로 분류되는 김세균 전 공동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문재인과 심상정,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에서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은 정의당을 민주당의 2중대로 만드는 데 기여할 뿐”이라며 “자유주의 정당으로부터 자립성을 확보하는 게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층 선명한 독자노선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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