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19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중앙홀로 입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단어는 ‘대화’다. 원고지 17매 분량의 길지 않은 연설문에 ‘대화’란 표현이 4차례 사용됐다. 의미가 비슷한 ‘토론’, ‘소통’이란 단어도 각각 2회, 3회 언급됐다. 반면 선거운동 기간 자주 입에 올렸던 ‘적폐’란 단어는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청산’이란 표현 역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는 대목에서 한 차례 사용하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국민 소통 선언’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이처럼 ‘소통’을 강조한 것은 전임 박근혜 정권의 실패가 ‘권위주의’와 ‘소통 부재’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문 대통령의 현실인식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문 대통령의 소통 의지가 가장 상징적으로 집약된 표현이 “광화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밀실형 권위주의’의 상징인 청와대가 아니라, ‘촛불 민심’의 발원지인 광화문광장 인근에 집무실을 마련해 ‘소통하는 국정’을 꾸려나가겠다는 뜻이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는 대목에선 국민을 ‘일방적 통치 대상’이 아니라 ‘쌍방향적 정치 주체’로 대하겠다는 고민이 엿보인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시도했던 ‘국민과의 대화’ 형식의 소통 창구를 활성화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 못지않게 문 대통령이 강조한 것이 ‘야당과의 대화’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밝히며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자유한국당 등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구여권의 주류 세력을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으로 규정했던 것과는 상반된 태도다. 이날 현충원 방문 뒤 가장 먼저 자유한국당 여의도 당사를 찾은 것도 상징적이다. ‘여소야대’인 국회 의석 분포를 고려할 때, 100석이 넘는 자유한국당의 협조가 없으면 원활한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 초반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다른 경쟁 후보를 향해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고 말한 적 있지만, 이날은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공언한 야당과의 동반 관계 구축은 이날 후보자를 지명한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에 이은 청와대와 내각의 후속 인사에서 일차적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며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능력 중심의 인사를 하되 출신 지역과 정치 성향을 균등하게 안배하겠다는 것이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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