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표절 논란 때
김상곤 당시 전국교수노조위원장이 사퇴 요구
“그때 교수단체가 사실 확인 더 했어야…
정치적 공방 너무 거세 출석 안하겠다”
김상곤 당시 전국교수노조위원장이 사퇴 요구
“그때 교수단체가 사실 확인 더 했어야…
정치적 공방 너무 거세 출석 안하겠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논문표절 의혹과 국회인사 인사청문회 출석여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 2006년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 전인 1986년, 교수로서 학생의 논문을 표절하였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2. 논문이 제출된 날짜만 확인해 보아도 표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제 박사학위 논문 1984년, 제 행정학회 논문 제출 1986년 11월, 학생의 학위논문 심사위원회 제출 1986년 12월 말 ~ 1987년 1월 초). 또 제 학위논문의 목차와 학생논문의 목차만 비교해 보아도, 학회나 저에게 전화로 확인만 해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아래 <붙임 1> 참조).
또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 해도, 저와 학생의 나이와 직업, 그리고 논문에서 사용한 고단위 통계기법의 난이성만 생각해 보아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짐작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33세로 대학에 막 자리를 잡은 신진학자였습니다. 그리고 학생은 당시 50대 중후반의 인근대학 재단사무처 고위 행정 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용된 통계기법은 요인분석과 경로분석 등 당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또 저와 그 학생이 소속된 학과에서는 가르친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PC를 사용할 수 없어 학교의 대형 컴퓨터를 사용해야하는 환경이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서 조교생활을 하며 대형컴퓨터 기반의 통계분석을 가르쳤습니다.
3. 1986년 의혹이 제기될 당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확인이 없었습니다. 이 점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김상곤 후보자가 이끌었던 교수단체는 전문가단체라는 점에서 더욱 확인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확인하는 일도 없었고, 학회에 논문제출 일자 등을 확인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그 단체와 그 단체의 대표가 제 학위논문과 학생의 학위논문을 읽어보았는지, 그리고 자료가 만들어지고 분석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려고 시도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면 표절문제나 표절의혹을 너무 가볍게 판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표절문제가 아니라 당시 정부의 개방정책 등을 꺾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당시 정부정책을 운영하는데 있어 그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4. 억울했던 만큼 제 스스로 국회에 청문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사상 처음으로 피청문인이 자청한 청문회(상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과는 ‘완승’이었습니다(아래 <붙임 2> 참조. 당시의 국회기록, 특히 표절과 관련하여서는 오전 부분의 기록을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표절문제는 길게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중게재와 연구비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검찰에 고발까지 되었습니다만 모두 ‘무혐의 처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당시 제기된 문제들이 표절의 문제만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반대와 유감의 표현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제가 안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냈습니다.
5. 이번 일을 두고 <11년 만의 공격과 수비의 교대> <김병준의 복수> <벼르고 있는 김병준> 등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마음 전혀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김병준이 김상곤의 논문표절을 밝힐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또한 아닙니다. 표절문제는 대단히 전문적인 문제입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전문성과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이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6. 표절문제가 좀 더 무겁고 신중하게 다루어졌으면 합니다. 너무 쉽게 의혹이 제기되고, 너무 쉽게 정치적 공방이 이루어집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창작을 하는 분들과 학자에게는 거의 죽음과 같은 일입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전문적 판단을 바탕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2006년의 제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수단체가 성명을 내기에 앞서 관련된 모든 논문을 놓고 같이 확인하고 검증하는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쳤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문을 쓰는 쪽도, 또 의혹을 제기하는 쪽도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이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7.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청문회에 출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라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김상곤 후보에 대한 공방이 너무 거셉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의 이러한 마음이 청문회를 통해 잘 전달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꾸짖고 나무라시겠지만 그 모두를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대신 관련된 의견이나 자료를 제출하라면 제출하겠습니다. 특히 제 박사학위 논문과 학생의 학위논문 목차, 그리고 당시 사용된 설문조사서 등, 1986년 당시의 정황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고인이 된 당시 학생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 스스로 적절한 방법을 통해 공개할 예정입니다.
8. 부족한 소견을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글, 더 옳은 글을 쓰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23일. 김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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