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준용 특혜 제보조작사건'에 대해 사과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하지만 신생 정당으로서 체계를 제대로 잡지 못한 한계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검증 부실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2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문준용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신생정당’, ‘제대로 잡지 못한 체계’를 언급했습니다. 신생 정당 맞습니다. 조직이 엉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 이 ‘엄·청·난’ 사건에 면죄부를 받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이 어떻게 대선을 치렀는지를 살펴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안철수-박지원-장병완…-이용주-이준서-이유미 등 조직적 범죄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진 않고 이 사안을 살펴봐야 합니다.)
안 전 대표는 당내 경선 당시 초선 의원들 위주로 캠프를 꾸렸습니다. 중진 의원들 중에 경선 캠프 참여를 제안받은 이들도 있었으나, 손학규·박주선 등 다른 후보들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송기석, 이용주, 채이배의 ‘초선 3인방’이 주축이 돼 경선을 치렀습니다. 박지원 전 대표와 가까운 초선 최경환 의원의 경우엔 박 전 대표의 만류에도 안 전 후보 쪽에 합류했습니다. 이밖에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외부 인사들도 있었습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와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등이 대표적입니다. 김경록 전 대변인, 김도식·김태형 전 보좌관 등 안 전 대표의 측근 그룹도 실무를 맡았습니다.
당내 경선이 마무리 된 4월 초, 안 전 대표는 갑자기 여론조사 지지율이 급상승하더니 돌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비슷한 수준의 지지율을 획득했습니다. 말 그대로 ‘갑작스러운’ 양자대결 구도였습니다. 이때 만난 당 사람들의 상태는 흥분 그 자체였습니다. 안 전 대표에게 비판적이던 일부 호남 의원들까지도 고무된 상태였으니까요. 이즈음 대선을 본격적으로 치를 본선 캠프가 구성됐습니다. 본선 캠프는 현역 의원의 ‘당 그룹’을 중심으로 짜여졌습니다. 박지원 상임선대위원장, 장병완 총괄선대본부장, 김광수 상황실장 등…. ‘컴팩트’한 형태로 경선에서 호흡을 맞췄던 기존 인사들은 요직을 맡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 전 대표의 측근 그룹은 대신 ‘부’자를 많이 달았습니다. 최측근 조광희 변호사는 비서실의 부실장을 맡았고, 김성식 의원은 총괄선대본부 부본부장을 맡았습니다. 역시 측근 그룹 박왕규 내일 부소장은 상황부실장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안 전 대표로부터 ‘부’ 직위를 제안받은 한 인사는 “측근 그룹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게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안 전 대표가 양해를 구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박지원 전 대표를 필두로 한 당의 조직과, 안 전 대표 주위를 둘러싼 측근 그룹은 제대로 융화될 수 있었을까요? 아니라는 게 다수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적잖은 문제가 여기서 시작됐다는 것도 다수의 의견입니다. 측근 그룹으로 선거를 치른 한 관계자는 대선 패배 뒤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양강구도를 찍었을 때부터 선대위가 갑자기 현역의원, 당 위주로 꾸려지면서 기존 그룹은 공식 라인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이후 ‘더 좋은 정권 교체’ 등 전략적인 키워드가 사라지고 주적 논란에 뛰어들거나 사립 유치원 사건이 터지면서 ‘진보·보수’ 프레임 등 안철수에게 불리한 쪽으로 가버렸다. 이후 정비해서 (선거 중반 ‘진보도, 보수도 문제’라는 메시지를 내놓은) 광화문 유세를 통해 기조를 다시 잡았지만 그날 밤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망쳐버렸다.”
반대로 이 ‘측근 그룹’때문에 꼬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양 쪽은 융합되지 못한 채로 선거가 진행됐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는 평가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느 캠프에나 세력간 다툼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국민의당은 대규모 정당에 비해 구조가 더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 안 좋았다는 게 선대위에서 활동한 한 관계자의 토로입니다. 그는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게 아니라 각각의 소그룹이 각자 컨트롤 타워를 가지고 후보에게 직보하려고 하면서 각개전투를 했고 전체를 아우르고 조율할 컨트롤러가 없었다”면서 “예컨대 민주당의 전병헌, 노영민처럼 총괄자가 없었고 선대위 회의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중심에 안철수 전 대표의 리더십이 놓여있다고 보는 게 과도한 해석은 아닐 겁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안 전 대표가 공식 직함을 맡지 않은 인사에게 많은 판단을 의존했다는 주장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습니다. 최측근이었던 한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싶어 몇 가지 제안을 했을 때 안 전 대표는 그 인사의 의견을 택했고 그 뒤로 나는 뒤로 빠지게 됐다. 안 전 대표가 타는 1호차에 동행할 사람도 그 인사와 보다 가까운 이로 바뀌었다. 그리고 박지원 전 대표에 대해서도 너무 과대평가를 했던 것 같다. 4~5명만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어도 캠프가 좀 돌아갔을 텐데 막판에는 거의 마비 상태였다.”
이에 대해서는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해당 인사가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안 전 대표의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영향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공식 조직보다는 비공식 인사의 입김이 후보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불만들이 적잖았습니다. 실제 기자들이 보기에도 공식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는 김성식 총괄선대부본부장의 소극적 활동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전략본부장도 겸하고 있었는데 그의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캠프 안에서 나왔습니다. 민주당에서 때때로 전략, 기조 브리핑을 기자들에게 하는 것을 보고 “국민의당도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김 의원은 잘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김영환 미디어본부장이 종종 브리핑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막판에 딱 1번, 브리핑룸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안 전 대표가 뚜벅이 유세에 나선다는 발표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패색이 짙은 때였습니다. 지난해 총선 때 전략을 짜고 선거를 이끌었던 이태규 의원도 이번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캠프 안팎에서는 “40명 의원이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계속 나왔습니다.
여기에 신생 정당, 소수 정당의 한계도 뚜렷했습니다. 조직력은 민주당에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역 유세 현장에선 확연히 차이가 두드러졌습니다. 연출력도 부족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당 관계자들보다는 다양한 연령의 지지자들이 밀착해 환호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많이 잡힌 반면, 안철수 후보의 주위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당 관계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 언론에서 두 유세 장면을 사진으로 대조한 게 화제가 된 뒤에야 당직자들은 현장에서 ‘초록옷’ 관계자들에게 중심부에서 나와달라며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험의 부족함이 분명했던 겁니다. 텔레비전 토론은 이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의원은 “초반 텔레비전 토론에서 실패한 뒤 전문가를 캠프에 소개해줬는데 그가 다녀온 뒤 ‘(그동안) 어떻게 토론을 치렀는지 모르겠다’며 놀라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안 전 대표의 리더십은 신생 정당의 한계를 채우지 못했고, ‘새정치’의 참신한 매력으로 이를 상쇄하지도 못했습니다.
안 전 대표의 ‘결정장애’ 특성을 문제점으로 꼽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중함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리더는 결단을 내릴 땐 내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 사례로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영입 건이 꼽힙니다. 이 과정에 관여했던 한 의원은 대선 직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안 전 대표가 도움을 요청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여러 인사들을 만나며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4월 초중반에 안 전 대표가 김 전 대표를 2차례 찾아왔지만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지지율은 4월19일께부터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다. 4월27일에야 급히 찾아와서는 ‘전권을 주겠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당시 선대위 핵심 인사 가운데 김 전 대표의 영입에 반대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들 사이에서 안 전 대표는 결국 결단을 못 내리고 ‘타이밍’을 놓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안 전 대표는 대선 10여일 전인 4월28일에야 김 전 대표를 내세워 ‘개혁공동정부’라는 승부수를 띄웠는데요.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네거티브’ 전략은 네거티브 전략대로 따로 굴러갔습니다. 김인원·김성호 공명선거추진단 부단장들은 자주 브리핑룸을 찾아 문준용 건 등을 발표했고,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그 빈도는 더욱 잦아졌습니다. 전략본부 일각에서 ‘네거티브는 안하는 게 낫다’는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중간에 사고도 한 번 났습니다. 대선 직전인 5월4일 이용주 공명선거추진단장은 예고 없이 브리핑룸을 찾아와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추진단에선 문준용씨가 일했던 한국고용정보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의 친척이 채용됐다고 주장해왔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어쩌면 5월5일 문제의 ‘조작 자료’ 발표의 전초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5월8일 오후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 중앙시장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는 도중 한 상인이 카네이션 꽃을 달아주자 안 후보가 웃으며 악수를 청하고 있다. 천안/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렇다고 국민의당 선거가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정당에 비해 소수 인원으로 꽤 많은 일들을 크게 뒤쳐지지 않게, 때론 훌륭하게 해왔습니다. 대선에서 비록 3등을 했지만 ‘다음’을 꿈꾸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호남의 중진 의원은 “대선 뒤 지역에 내려가면 ‘홍준표가 될까봐서 문재인을 찍었지 안철수가 싫어서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안철수에게 미안하다는 반응들이 있어 내년 지방선거나 다음 대선을 생각할 때 그렇게 나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런데 이 일이 터져버렸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선 뒤 자부심을 느끼는 당직자들도 많았다. 신생 정당에, 이 적은 인원으로 큰 민주당과 대적해 이 정도 선거를 치러냈다는 자부심이었다. 선거 기간동안 여기저기서 별다른 구멍 없이 치러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렇게 큰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평가들이 이번 제보 조작 사건을 제대로 다 설명할 순 없을 것입니다. 모두에 말했듯 단순히 부실 검증, 시스템 문제가 아닌 ‘조직 범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고요. 그래도 이번 대선 과정에서 봤던 당의 역량과 안 전 대표의 리더십은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당 조직과 측근 그룹의 이질감, 컨트롤 타워의 부재, 리더로서의 결단력 부족까지…. 어쩌면 이런 문제점들이 누적되며 ‘양자 구도’에서 ‘3등 위기’로까지 하락했고 이런 상황에 이유미 당원 등의 대담한 위법 행위가 맞물리면서 국민의당이 이번 최대 위기를 맞게 된 게 아닐까요.
12일 제보 조작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한 안 전 대표는 ‘정계 은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도 “은퇴는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안 전 대표는 12일 ‘신생 정당’, ‘체계’를 언급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도 모두 저의 한계이고 책임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습니다.” 안 전 대표가 실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면, 본인이 말한 “저의 한계와 책임”이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되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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