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29일 부산시청 1층 대회실에서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를 열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목표로 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개헌특위)의 전국 순회 첫 토론회가 부산광역시청에서 열렸다. 200여명의 부산·울산·경남 시민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오후 2시부터 3시간45분여 동안 토론이 이어졌다.
29일 부산광역시 연제구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이주영 개헌특위 위원장, 개헌특위 위원인 최인호·전현희(이상 더불어민주당)·이채익(자유한국당)·이상돈(국민의당)·노회찬(정의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등이 참석했다. 국회방송으로도 생중계됐다.
최인호 민주당 의원이 기조발제를 통해 개헌의 필요성과 개헌 방향과 내용 등을 밝혔다. 최 의원은 △기본권 보장 강화 △정부형태 개편 △지방분권 강화 △재정·경제민주주의 강화 등 헌법개정 방향을 설명했다. 최 의원은 “87년 헌법체제는 급격한 대내외 환경변화와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승자독식 구조에 따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지역적 갈등이 심화되어 왔다”며 “이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체제를 구축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기본권 보장 강화와 관련해서 △기본권 성격에 따라 기본권 주체를 ‘국민’ 또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문제 △차별금지사유로 인종과 언어를 추가하는 문제 △범죄피해자의 구조청구권을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 외에 정신적·재산적 피해까지 확대하는 방안 △군인·경찰 등에 대해 배상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이중배상금지조항 삭제 여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시 여부 △생명권, 안전권, 보건권, 소비자의 권리,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의 권리, 망명권 신설 여부 △사상의 자유 명기 여부 △공무원의 노동3권 강화 여부 △‘근로’ 표현을 ‘노동’으로 변경 여부 △검사에 의한 영장청구권 삭제 여부 등이 개헌특위에서 논의됐다고 최 의원은 밝혔다.
최 의원은 정부형태(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그동안 진행된 논의도 소개했다. 개헌특위는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협치에 기반한 정부형태로 개편한다는 원칙 아래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개선 △혼합정부제 도입 △내각책임제 도입 등을 검토해왔다.
지방분권 강화의 경우 △자치입법권 도입 △자치재정권 도입 △보충성의 원칙(지역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무는 원칙적으로 시·군·구가 처리하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경우는 시·도의 사무로, 시·도가 처리하기 어려운 사무는 국가의 사무로 각각 배분한다는 원칙) 도입 △헌법 1조에 우리나라는 지방분권국가임을 규정 여부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최 의원은 전했다.
최 의원은 그외에 △예산법률주의 도입 여부 △경제민주화 규정 강화 여부 △토지공개념 신설 여부 △헌법 전문에 복지국가·분권국가 등 새로운 시대 가치와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등 역사적 사실 추가 여부 △수도 규정 신설 여부 등을 개헌특위에서 토론해왔다고 밝혔다.
29일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토론 내용을 들으며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토론회가 서울·수도권이 아닌 부산에서 이뤄진 만큼 지방분권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김진홍 부산시의회 의원은 “소극적인 분권을 담은 개헌은 지방분권형 개헌이 아니다”라며 “지방 정부에 자치입법권을 통해 법률 또는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하고 지방정부의 자치재정권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배준구 경성대 교수도 “프랑스가 지난 2002년 지방분권형 개헌을 추진한 뒤 지방의 활력을 되찾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에서 경제·재정 부문이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재원 부경대 교수는 “새로운 헌법에 ‘생산’이 아닌 ‘분배’를 담아야 한다. 이건 복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장 중심의 새로운 분배체계를 위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개헌특위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최상한 경상대 교수는 “국민이 없는 개헌 논의”라며 “국회라는 시장에서 앙꼬 없는 헌법 찐빵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주권자 없는 헌법 개정 논의, 주권자도 모르는 정부 형태 논의가 되고 있는데 반드시 국민참여와 국민주도가 보장될 수 있도록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최우영 동아대 교수는 “이 토론회 자리에 구체적인 개헌안이 제시됐다면 더 생산적인 토론이 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주영 위원장은 “국민대토론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 부분이 뼈아픈 부분”이라면서도 “개헌특위에서 개헌안에 대해 심도있는 숙의과정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직 단일안을 제시하기에는 이른 단계로 본다”고 답변했다.
이날 토론회 전체 시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70분가량은 방청객들에게 할애됐다. 토론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부산시청 앞에서는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국민연합’ 회원들이 “‘성평등’ 항목 신설을 통한 동성애·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었는데 토론회 방청객 200여명 중에 다수가 이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동성애 관련 질의나 의견을 되풀이해서 제시했고 관련 내용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거나 응원해 사회자인 이주영 의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한 활동가는 “개헌 국민대토론회에 기대가 많았는데 수화통역이나 자막 등이 없어 아쉽다. 다른 지역에서 토론회를 할 때는 그런 부분들이 꼭 갖춰주면 좋겠고, 이번 10차 개헌에 장애가 있고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가 개선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주길 바란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개헌특위는 이날 부산을 시작으로 오는 31일 광주, 다음달 5일 대구 등 9월말까지 전국 11개 도시에서 국민대토론회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경실련 등이 모인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국회 개헌특위가 전국순회토론회를 시작하지만,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해야 할 시민사회단체들은 전국순회토론회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개헌특위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텔레비전 토론회와 전국순회토론회만으로는 개헌 논의과정에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한다고 보기 어렵고 토론회 과정에서 모인 국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개헌과정의 국민 참여를 개헌안 발의를 진행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산/글·사진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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