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 회의를 열기에 앞서 손금주 수석대변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손 대변인은 회의 직후 대선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민의당이 5·9 대선 패배가 안철수 대표의 전략과 철학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 대선평가보고서 전문을 1일 공개했다. 자기반성과 혁신의 의지를 다지겠다는 취지인데, 이미 전당대회가 끝난 터라 안철수 책임론이 새롭게 불어닥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최근 안 대표가 주창하는 ‘극중주의’는 대선평가보고서가 패인으로 짚은 안 대표의 ‘중도’와 일맥상통해 안 대표의 정치노선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위원장 이준한 인천대 교수)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전략도 공약·정책에 대한 철학도 부족했다”는 말로 요약된다. 평가위는 ‘중도’를 표방하며 촛불 민심과 거리를 둔 안철수 후보의 전략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의 핵심 슬로건은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이었으나 (안철수) 후보는 이러한 메시지로부터 계속 일정한 거리를 뒀다”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탄핵과 경선 이후 적극적으로 촛불의 메시지를 껴안고 이를 검찰개혁, 적폐청산 등의 정책적 대안으로 이끌어 간 반면, 안철수 후보는 ‘엠비(MB) 아바타’, ‘박지원 상왕론’ 같은 지엽적이고 반촛불적인 이미지에 갇혔다”고 분석했다. 안 후보의 ‘단설 유치원 논란’도 비판했다. 평가위는 “유치원 공약이 후보 공약 중 최악의 공약이었다”며 “안 후보에 대한 국민적 기대치가 꺾인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의 캐릭터에 대한 거침없는 쓴소리도 담겼다. 평가위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약하고 ‘안철수의 사람’을 만드는 데 태생적으로 소홀하다는 평가가 주류인데 안 대표의 개인주의적 경향은 그 자체로 반정치적인 이미지를 준다”며 “대선 후보로서는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매력도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공조직과 시스템이 아닌 비선과 계파 이해관계로 운영된 선거조직도 문제점으로 적시됐다. 평가위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전략-홍보-정책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통일된 업무체계를 확보해 가동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아니라 옥상옥, 중복성이 강한 조직 구조였다”며 “자기 사람 심기와 자리 나눠주기 식의 구시대적, 비효율적으로 선대위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또 “가장 큰 문제는 선대위의 전략본부가 ‘전략’의 실질적 컨트롤타워였는가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후보자와 소수의 전략컨설팅 그룹이 외곽에 존재했다는 평가를 불식시킬 만한 충분한 근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며 ‘비선 문제’를 제기했다. “정책공약, 후보 동선, 캠페인 일정 등을 소수의 캠프 인력으로 운영하거나 후보가 상당 부분 직접 개입함으로써 선거운동의 비효율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도 담았다.
이날 대선평가보고서가 발표된 뒤 안철수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보고서에 나온 내용들, 제가 고칠 점과 당이 고칠 점들을 겸허하게 수용해서 우리 당을 제대로 개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대표는 평가위가 보고서 작성을 위해 면담을 거듭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는 등 대선 평가 작업에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보고서는 안 대표에 대한 비판을 구체적으로 명시했지만 당내 후폭풍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중진 의원은 “보고서를 전당대회 전에 공개하는 게 맞았다”면서도 “하지만 절차를 거쳐 당대표가 됐으니 다시 대표직을 내려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안철수 책임론 때문에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후보 사퇴 요구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민주적인 절차로 당대표가 된 이 상황에서 당내에서 별다른 후폭풍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안 대표의 리더십에 기대가 없으니 싸울 필요도 없는 거라고 본다. ‘악플’보다도 안 좋다는 ‘무플’ 상태”라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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