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오른쪽)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 전체회의에서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진수희 최고위원의 위로를 받자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금품수수 의혹을 받아온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7일 사퇴했다. 6·26 전당대회에서 ‘자강론’을 앞세워 선출된 이 대표가 74일 만에 물러나면서, 내년 6·13 지방선거 전후로 예상됐던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진로 선택’ 시점이 앞당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전체회의에서 “야당 대표로 막중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려 깊지 못했던 불찰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진실은 조만간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라며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강’이 옳다고 믿는 많은 동지들이 저의 사퇴로 자강의 불씨가 수그러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개인의 부족함을 꾸짖어주시되 바른정당은 개혁보수의 길을 굳건히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의석수 20석으로, 의원 한명만 빠져도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어버리는 바른정당은 그동안 ‘당원찾기 전국투어’를 하는 등 독자생존의 길을 걸어왔다. 바른정당은 일단 이 대표의 사퇴로 당 밖으로 나가려는 원심력이 커지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바른정당 초대 대표였던 정병국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는 인물이나 지역 중심의 정당이 아니다. 응집력이 약한 것이 단점일 순 있어도 대표 한 명 물러났다고 당의 운명이 좌우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도) 자신들의 존립이 어려우니 우리를 흔드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당의 단합을 보여주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날 이혜훈 전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 등 8명이 ‘번개 점심’을 함께했다. 한 참석자는 “김무성 의원과 이혜훈 대표의 사이가 불편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 아니냐.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 의원이 만든 점심 자리에서 두 사람이 악수하고 포옹하고, 오히려 관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유승민·김무성 의원이 당의 새로운 간판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김무성 의원은 이날 “뒤에서 돕겠다”며 비대위원장직을 거부했다. 유승민 의원은 “당의 총의를 모아 결정할 사안”이라며 다소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면 최고위원들은 ‘동반사퇴’가 불가피한 비대위 대신 주호영 원내대표 권한대행 체제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지방선거도 아직 남아 있고 비대위를 꾸릴 만한 비상상황이 아니다. 대행체제로 가다가 12월쯤 전당대회를 치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권한대행 체제는 ‘대표 궐위 30일 내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당헌 때문에 길게 끌고 갈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비대위는 당원대표자회의만 열면 구성할 수 있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최고위원들도 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했다.
바른정당의 리더십 공백 상태나 혼란이 지속될 경우 자강론보다는 통합론이나 연대론 쪽으로 논의가 번질 가능성도 있다. 당의 한 의원은 “일부는 국민의당 쪽을, 일부는 자유한국당 복귀를 생각하고 있다. 다만 지금 두 당의 사정이 우리가 갈 만한 처지가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독자생존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될 경우 통합론은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유 의원은 이날 ‘자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당이 성공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