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보안사 ‘81·85년 문건’ 등 공개
온건유족에 취업알선·자녀학비면제
극렬유족은 사찰하며 ‘악의적 소문’
“정계진출 위해 조직 정치적 이용해”
구속자가족 농성 진압때 CIA 협조도
온건유족에 취업알선·자녀학비면제
극렬유족은 사찰하며 ‘악의적 소문’
“정계진출 위해 조직 정치적 이용해”
구속자가족 농성 진압때 CIA 협조도
전두환 정권이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를 동원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 유족들을 분열시키고 고립화하는 공작을 벌인 사실이 담긴 보안사 내부 문건이 26일 공개됐다. ‘광주사태 관련 유족 순화 계획’, ‘물빼기 작전’ 등 정권 차원의 각종 유족 분열 계획을 수립해 학자금 지원, 취업 알선 등 정부 지원에 차별을 두거나 유족 사이에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등의 방식으로 내분을 부추기고, 종교인 등을 상대로 한 회유 공작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구속자 가족의 농성을 진압하려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협조도 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철희·박주민 의원은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보안사 내부 문건을 각각 언론에 공개했다. 이들 문건은 두 의원이 국방부에 요청해 받은 자료들이다.
■ 유족 성향 분석 박 의원이 공개한 ‘광주사태 관련자 현황’(1981년 작성 추정) 문건을 보면, 당시 보안사는 분열 조장을 위해 유족들을 극렬과 온건파로 나누고, 다시 극렬 유족을 에이(A), 비(B), 시(C) 등급으로 재분류해 관리했다. 정부를 강경하게 비판하고, 유족을 선동하며, 강경파로서 유족회 간부가 된 이들에게 ‘A 등급 극렬 유족’ 딱지를 붙였다. 정부에 불만을 가진 보상금 미수령자는 ‘B 등급’, 타의로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C 등급’으로 각각 분류했다. 전두환 정권이 광주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유족의 틈을 벌리고 강경파를 와해시키기 위한 성향 분석 작업을 벌인 것이다.
■ 유족 분열 공작 보안사는 유족 활동을 방해하고, 유족 사이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벌였다. 이 의원이 공개한 ‘광주사태 1주년 대비 예방정보 활동 결과’(1981년 5월28일 작성)란 제목의 문건을 보면, 보안사는 “광주사태 1주년을 전후해 불순세력의 선동행위와 광주 주민의 불만의식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위령제 등 각종 추도행사 봉쇄, 불순세력의 잠복 활동 와해 등을 시도했다.
이 의원이 공개한 다른 문건 ‘광주 5·18 유족 순화 사업 추진 중간보고’(1985년 11월 작성)를 보면, 보안사는 극렬파에 대한 와해작전을 ‘물빼기 작전’이라 이름 지은 뒤 온건 유족들을 접촉해 “(유족회) 임원진이 정계진출을 위해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악의적 소문을 퍼뜨려 불신을 조장하고 온건 유족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실적’으로 기록했다.
또다른 문건 ‘광주사태 관련 유족 순화 계획’(1986년 2월 작성)을 보면, 보안사는 명절에 유족에게 물량이 지원될 때 온건 유족에게 우선권을 주거나, 이들에게 월 5만원씩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세워 유족들 간의 분열을 시도했다. 또 극렬 유족에 대해선 사찰을 진행한 반면, 온건 유족들이 야유회를 가면 관광버스·음료수를 지원하거나 이들에게 쌀·연탄 제공, 취업 알선, 자녀 학비 면제 등의 방식으로 유족 간 갈등을 일으키고, 유족회 월례모임을 축소시키는 공작을 진행했다.
보안사는 1988년 이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광주사태 관련자 순화’란 제목의 문건에서 분열 공작의 성과 가운데 하나로 “온건 유족 회원이 ‘왜 유족을 선동하느냐’며 강경 유족 부부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적었다.
■ 미 중앙정보국 협조도 요청 이 의원이 공개한 ‘광주사태 1주년 대비 예방정보활동 결과’ 문건을 보면, 보안사가 5·18 관련 구속자 가족의 미 공보원 농성을 진압하려고 경찰을 동원하면서 미국 중앙정보국과 협조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보안사는 또 광주 지역 대학교와 종교인을 대상으로 회유·공작도 실시했다. 전남대 특정 동아리를 해체시키기 위해 학군단(ROTC)에 돈을 주고 첩보 수집 활동을 시켰으며, 종교인의 추모예배를 막기 위해 250만원을 들여 광주·전남 지역 종교인 68명에게 제3땅굴·판문점 등으로 안보 견학을 보내기도 했다.
이철희 의원은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통해 전두환 정권이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를 앞세워 더러운 공작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며 “5·18 진상조사 특별법 통과와 진상조사위를 통한 철저한 진실규명이 시급하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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