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토론을 한다고 해서, 실제 결론이 날 거라고 기대하는 의원들은 사실 없었습니다. 어쨌든 국민의당은 21일 끝장토론을 통해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한 결론을 내보겠다고 밝혔고, 어제 그 날이 왔습니다. 오후 2시 토론을 앞두고 안 대표는 국회 본청 2층의 당대표실에서 최명길, 이태규 의원 등 통합 ‘찬성파’ 의원들과 막판 비공개 회의를 가졌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같은 층 의원총회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이날 저녁에 중진 의원들과의 만찬 약속을 잡아놨기 때문에 ‘끝장’이라곤 하지만 저녁 전에는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소위 ‘뻗치기’를 시작했습니다. 대표적 통합 ‘반대파’ 천정배 의원과, 안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 손금주 의원은 각각 국외 방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채 의원총회가 시작됐습니다. 의총장에 기자들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한 이견으로 분당 위기에까지 놓인 가운데, 21일 끝장토론이라는 ‘전쟁’을 앞둔 국민의당 의원총회장.
오랜만에 ‘장이 선’ 국민의당. 의총장 입구에서 안철수 대표가 입장하길 기다리는 기자들.
의총장 내부 분위기는 생각보다 더 ‘살벌’했다고 합니다. 호남 중진 의원들이 먼저 나서 안철수 대표를 비판했고, 안 대표가 통합에 대해 “말바꾸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특히 박지원 의원은 안 대표 쪽에서 통합에 우호적인 여론조사를 언론에 흘리는 등 “조직적 음모”를 해왔다며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한 의원은 “그때 박 의원의 시선은 안 대표를 향해 있었고 안 대표는 얼굴이 빨개져서 부르르 떨더라”고 말했습니다. 김경진 의원은 안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합니다. 김관영, 이태규 의원 등 ‘찬성파’ 의원들은 전당원 투표를 당의 행보를 결정할 판단 방법으로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진 않았습니다.
의원들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때론 상임위 일정으로 이따금씩 의총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기자들이 따라붙어 내부 분위기를 물었습니다. 얘기하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이용주 의원
-분위기 어때요?
“반대가 더 많아요. 훨씬 많습니다.”
-의원님은요?
“저도 비슷한 말 했죠.”
-통합에 반대한다?
“네.”
-오늘 공감대가 형성될까요?
“단일한 결론이 나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이태규 의원
“제가 객관적 자료를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조사한 게 있는데, 호남(여론)도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찬성하는 의견이) 더 높습니다.”
-전당원 투표제 얘기도 나오나요?
“해결이 안 되면 그렇게 가야되는 것 아니냐….”
-안에 분위기는 통합 반대가 우세하다고 하는데요?
“아닙니다.”
요즘 ‘반안’에 깃발을 들고 있는 유성엽 의원은 중간에 기자들과 만나 “(안 대표에게) 사퇴를 권고한 분도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당을 잘못 운영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한 분도 있어요. 누구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토론 뒤 잡혀 있는 안 대표와의 만찬에 대해서는 “쓸데 없이 밥만 먹을 게 아니라 진짜 소통을 해야죠”라며 에둘러 불참 뜻을 밝혔습니다.
호남 중진 중에 ‘온건파’로 꼽히는 박주선 의원은 먼저 자리를 뜨며 기자들에게 “여기서 갈라져서 헤어져서는 안 된다, 국민과의 약속이 있고 앞으로 할 소임과 역할이 있는데 다당제는 몇 개월간의 정치 실험의 제도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라고 자신의 의총 발언을 전했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안 벌어질 것이다”라며 웃었습니다. ‘분당’은 아니라는 겁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지나가며 종종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뻗치기’하는 국민의당 취재 기자들에게 “어떻게 돼가냐”, “박지원 의원은 뭐라고 했다더냐” 등을 세세히 물었고, 예산결산위원회 소위 회의장에서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끝장토론’ 중간에 예결위 회의에 참석한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에게 “형님, 끝장토론하고 오셨냐. 끝장냈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의원총회가 끝나고 문구를 정리중인 김경진 의원 등 관계자들(왼쪽).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다.
토론을 시작한지 5시간이 지났습니다. 7시 25분이 되자 굳게 닫혀있던 의총장 문이 열리고, 의원들이 하나 둘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끝난 겁니다. 김경진 원내대변인이 의총장과 같은 층에 있는 원내대표실에서 브리핑을 할 것이라는 공지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의총장 안을 들여다보니 대부분 의원들이 빠져나간 채 김경진, 최명길, 김관영 등 몇몇 의원들이 남아 기자들에게 밝힐 문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안 대표도 현장에 끝까지 남아 당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제 브리핑하고 끝나겠구나’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습니다. 문구를 정리하던 김경진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선거국면에서 선거연대를 하자는 것이죠? 여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고요?” ‘정책연대’까지는 어느정도 큰 이견이 없었으나 ‘선거연대’ 등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에 대해선 여전히 정리가 안됐던 것입니다. 기자들 시선이 쏠리자 의총장 문은 다시 굳게 닫혔습니다.
결국 7시40분부터 시작된 브리핑에서 김경진 의원은 이렇게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국민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다당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통합 논의가 당의 분열의 원인이 돼선 안된다는 점에 의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번 논의에도 불구하고 당이 화합해야 한다. 통합 여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바른정당이 지난 겨울 탄핵 국면에서 보여준 행동 등을 보면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책연대 등을 통해 바른정당과 신뢰를 구축해가고, 신뢰를 기반으로 선거연대 등 진전된 논의를 이어가겠다.”
김 의원은 “결론이 없다”며 민망해했습니다. 지난달 25일 국회의원-최고위원 연석회의에서 내렸던 결론에서 진전된 게 없었습니다. ‘정책연대→선거연대→통합’ 가운데 첫 단계에 대해선 공감했지만 진전 여부는 향후에 판단하겠다는 일종의 ‘봉합책’이었습니다. 끝장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서로의 이견만 더 확실히 확인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안 대표와 중진 의원들의 이날 저녁 만찬은 취소됐습니다. 김 의원이 원내대표실에서 브리핑을 할 동안, 안철수 대표도 의총장을 빠져나가며 만난 기자들에게 ‘백브리핑’을 했습니다. 그의 방점은 ‘통합 논의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것에 명확히 찍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제 입장을 말씀드렸고,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곧이어 지역위원장들을 만나고, 당원들과의 만남을 가질 것 입니다.”
애초 취재기자들은 안 대표가 의원총회 모두에 발표한 장문의 입장문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줄 것을 비서실장인 송기석 의원 등에게 요청했습니다. “통합 의지를 밝혔다”는 면에선 의원들의 ‘전언’이 대체로 같았지만, 그 해석에선 미세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배숙 의원은 기자들에게 “안 대표가 통합이 최선의 방향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에 대해선 그렇게 가능하지 않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전했습니다. 송기석 의원은 “방향이 맞다고 본다. 다만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모든 브리핑을 마친 뒤 김경진 의원은 기자들에게, 안 대표의 입장문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외부로 나가는 잡음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였습니다.
이튿날인 오늘 박지원, 정동영 의원은 각각 라디오에 나와 안 대표를 향해 “구상유취(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거짓말” 등의 표현을 쓰며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판세를 볼 때 통합 반대파 의원이 더 많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최명길 의원은 당 최고위 회의에서 “3분의2가 통합은 안 된다고 인터뷰들을 하고 계시는데 사실은 반대다”라며 “이쯤 하시고, 정말 전반적 분위기를 왜곡하시는 그런 공개적인 말씀은 서로들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반박했습니다. 다시 시작됐습니다.
글·사진/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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