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구속)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23일 동료 의원들에게 “개인적 감정을 떠나 상식으로 판단해 달라”, “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억울함과 도움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돌렸다. 마침 이날 검찰은 오는 28일 최 의원을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기국회는 다음달 9일까지인데, 동료 의원들에 대한 최 의원의 ‘읍소’는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와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표결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 의원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돌린 A4 두 장 반 분량의 ‘호소문’에서 “이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님을 잘 보필하지 못해 우리 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결과로 벌어지는 일들”이라며 ‘정치적 수사’임을 주장하면서도 “정치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대통령 탄핵 과정부터 지금까지 여권과 좌파언론으로부터 끊임 없이 비리 연루 의혹 공세에 시달려왔지만, 비리 의혹들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특검과 검찰이 밝혀 주었다”며 본인의 결백을 강조한 뒤,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뇌물을 받은 적이 없다. 이는 정치보복을 위한 명백한 음해”라고 주장했다. 결백을 주장하며 ‘동대구역 할복’을 언급했던 최 의원은 이번에는 “제 인생과 정치생명을 걸고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최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결백을 강조한 배경에는,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과 집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검찰 조사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당 차원 또는 친박계의 적극적인 ‘엄호’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자유한국당은 최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야당 탄압’ 등 당 차원의 논평이나 성명조차 내놓지 않았다.
최 의원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총액으로만 편성되는 예산으로 기재부 장관이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런 명백한 사안을 가지고 예산 감액을 막기 위해 기재부 장관인 저에게 로비를 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억울한 심정”이라고 했다. 또 “이병기 전 원장은 2007년부터 박 전 대통령을 주변에서 함께 도와온 사이다. 그런 사람이 만약 (예산 감액을 막는) 그런 일이 필요하다면 전화 한 통화면 될 일이지 무슨 뇌물을 주고 로비를 한단 말이냐”고 주장했다. 최 의원의 이런 주장은 돈을 전달했다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의 진술을 확보한 검찰 수사를 앞두고 뇌물 혐의의 핵심인 ‘대가성’ 부분을 피해가려는 발언으로 보인다. 최 의원은 “기재부 장관이 실세라면 국정원장은 그보다 더한 실세면 실세였지 그 아래인 적이 있었느냐”, 친박 실세로 군림했던 자신보다 이 전 원장이 더 실세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최 의원은 “국정원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일이 없다. 저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야 말로 명백한 정치보복성 편파수사임을 정권 스스로 자인하는 확실한 증거”라며 “저 최경환에 대해 실망하신 분들도 계시고 섭섭해 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특수활동비 관련 사건은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오직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입각해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특히 최 의원은 “그동안 청와대만을 향했던 현 정권의 정치보복의 칼날이 이제 본격적으로 여의도를 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달라. 그냥 저 하나의 문제가 아님을 직시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마지 않는다”고 했다. 최 의원의 이런 ‘낮은 자세’는 검찰의 수사에 따라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특활비 유용과 관련해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을 구속 수사하고 있다. 최 의원의 혐의와 액수, 최근 수사 강도에 비춰볼 때 검찰이 사전구속영장 청구도 예상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