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유치원에 등원하는 어린이들. 연합뉴스
여야의 내년도 예산안 힘겨루기에 따라 아동수당 신설 시기가 늦어지고 대상도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초연금 인상 시기도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야당 요구 탓에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아동·노인 복지정책이 예산 공방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법정시한(2일 자정) 안에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국회 원내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2일 밤까지 협상을 시도했지만 현장 공무원 충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세사업장 부담을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등 쟁점 사안에서 부딪혀 ‘9개 협상안’의 일괄 타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여야의 말을 종합하면, 협상 목록 가운데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관련 요구를 여당이 일부 수용하면서 복지 축소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소득 하위 70% 가구의 노인(만 65살 이상)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월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늘리기로 하고, 내년 인상분 1조7천억원을 편성했다. 또 내년 7월부터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월 10만원을 주는 아동수당(만 0~5살 대상)을 신설하기로 하고, 1조1천억원을 배정했다. 정부·여당은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253만명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후에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신설이 이뤄지면 여권에 선거 호재가 된다며 최소한 선거 3개월 뒤로 시행을 늦추자고 요구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선거에 악용될 수 있으니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모두) 내년 10월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야당은 소득 상위 가정의 아동수당 지급을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노인·아동 복지의 경우 후퇴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으나 현장 공무원 충원과 일자리안정자금 등의 쟁점을 풀기 위해 기초연금과 아동수당에 대한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민주당 원내 핵심 인사는 3일 “결국 소득 상위 10% 가정의 아동을 수당에서 제외하는 것을 고려한 것은 보편적 복지라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상징적 정책을 크게 양보한 것”이라며 “다만, 지급 시기를 지방선거 직후인 7~8월이 아닌 10월로 연기하는 것은 과한 요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동수당은 지난 5월 대통령선거 당시 여야 공통 공약이었고, 기초연금 인상은 노인빈곤 해소를 위한 주요 정책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여야의 이번 협상 방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 가구의 초·중·고생까지 월 15만원의 ‘미래양성 바우처’ 지급을 약속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소득 하위 80% 이하 만 0~11살까지 월 10만원 수당을 공약했다. 당시 국민의당이 추정한 아동수당 공약 예산은 현 정부보다 많은 연간 5조1천억원이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보편적 아동권을 보장하는 사회수당인 아동수당이 차등 지급되는 것은 시대착오”라며 “국가와 사회가 모든 아동의 양육을 함께 책임진다는 선언으로서, 보편적 아동수당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을 여야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입만 열면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자유한국당이 기초연금 인상 시기를 늦추자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4일 예정된 본회의에 앞서 오전부터 ‘담판 협상’을 재개하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예산안 처리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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