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참사 1089일 만에 목포항에 육상 거치된 세월호가 선체 세척 작업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다해 디지털에디터석 콘텐츠기획팀 기자 doall@hani.co.kr
해양수산부가 2015년 11월19일 보도된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 문건’이 해수부 내부에서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새누리당-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해수부 공무원들이 협업해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 일부가 사실로 드러난 겁니다.
안녕하세요? 당시 <머니투데이> 정치부 <더300> 소속으로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 문건’을 처음 보도했던 박다해입니다. 지난 7월 <한겨레>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해수부 문건’의 출처가 2년 만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그날 기억을 다시 더듬어봅니다.
이 문건은 당시 당-정-청이 독립 기관인 특조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얼마나 세세하게 개입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문건은 세월호 특조위가 청와대 관련 조사를 진행할 경우 △특조위 내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이 전원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할 것 △새누리당 의원들이 비정상적·편향적인 특조위 운영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것 등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을 담고 있습니다. “(특조위의) 활동기간 연장 최소화를 도모한다”, “(해수부와 특조위가) 주요 안건 및 의사결정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특조위는 출범 직후 직원 선발은 물론 예산 배정까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삐거덕대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이 특별법 시행 2주 만에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한 것, 기억하시죠? 해수부는 대외적으론 “특조위의 독립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론 특조위의 조사 권한을 대폭 축소한 시행령을 만들어 공포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문건을 보도 일주일쯤 전에 입수했습니다. 그동안 특조위를 둘러싸고 정부·여당이 어떻게 협조해왔는지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것을 보고 사실 확인을 하는 중이었죠. 특히 문건 작성에 해수부는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개입돼 있다는 점 등을 입증하기 위해 추가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정말 해수부가 마련한 ‘각본’대로 흘러가더라고요.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추천 특조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자회견이 사전에 기획된 것임을 알리려면, 회견 전에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부랴부랴 기사를 작성해 오전 9시59분에 내보냈습니다. 아마 그때 국회로 오고 있었을 특조위원들은 그 기사를 못 본 모양입니다.
특조위원들은 오전 10시30분 예정대로 “특조위가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할 경우 사퇴도 불사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심지어 특조위가 ‘참사 당일 청와대의 업무대응 적정성’에 대한 조사 개시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상정(11월23일)하기도 전의 일입니다. 조사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선수를 쳐 반대 여론을 만들려고 했던 셈이죠. 50분 뒤(오전 11시20분)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특조위는 이제껏 활동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특조위에 대한 특별조사가 필요하다”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모두 문건에 쓰인 그대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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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는 어땠을까요? 보도 직후 해수부는 문건의 출처에 대해 “모른다”, “확인이 안 되고 있다”며 철저히 함구했습니다. 해수부 내부에선 ‘당분간 국회를 출입하지 말고, 각종 현안을 문서로 기록하지 말 것’이란 내부 방침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문건의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11월24일)가 열렸지만 해수부 장차관과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였던 안민석 의원이 “이 문건은 세월호 특조위의 자율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해수부의 예산을 징벌적으로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항의해 예산 심사가 파행됐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아마 그들이 지켜야 할 대상은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대통령의 안위’였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해수부 장관을 지냈던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친박’ 핵심 인물이라는 점, 장관직을 이어받은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이 모두 참사 전후로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지낸 점도 무관하지 않겠죠. 지난 7월 ‘박근혜 청와대’의 정무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된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 지시’ 문서는 당시 해수부 문건이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뒷받침합니다.
2년이 흐르는 동안 문건 실무 책임자 중 일부는 해수부를 퇴직하고 산하기관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은 아픔을 가슴에 고통스럽게 묻고 또 묻어야 했을 겁니다. 문건이 처음 보도됐을 때 “이런 세상에선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힌 유족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뒤늦게나마 나온 해수부의 자체 감사 결과가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