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이 지난 5일 국민의당에서 탈당했다. 2016년 3월2일 국민의당에 합류한지 706일만이다. 박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한 때 나름의 ‘케미’를 자랑했다. 지금은 서로 욕하며 헤어지는 사이가 됐다. 애초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이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던 박 의원이 합류했을 때는 국민의당이 창당한지 딱 한 달이 됐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안철수 대표 측근들 중에는 박 의원의 영입에 반대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구태 호남 중진’의 이미지가 안 대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국민의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주류’ 의원들을 흡수해 교섭단체를 이루려는 데 한창 집중할 때기도 했다. 그는 18번째 의원이었다. 일종의 ‘전략적 제휴’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을 의식한 듯 박 의원은 그런 지적을 대놓고 먼저 언급했다. “안철수의 새정치와 박지원의 구정치를 합해서 집권 가능성을 열겠다”는 발언을 자주 했다.
초반 둘의 궁합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2016년 6월 20대 국회 첫 원구성 협상 때 국민의당은 알짜 상임위원장 자리를 꿰차며 협상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가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안 대표는 그 해 6월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새누리, 더민주는 국회의장 후보를 각자 정해 본회의 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40석 캐스팅보터 정당으로서 첫 포문을 연 것이었다. 1면에 대서특필됐다. 조간 기사가 나오자 당시 원내대표이던 박지원 의원은 그날 바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에 원내대표 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후 박 의원은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주도했다. 당시 국회의장직 도전을 고민하던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등을 비공개로 접촉하며 논의를 진전시키기도 했다. 넓은 인맥이 토대가 됐다. 안 대표가 전면에 서서 여론을 이끌고 박 대표는 막후 협상을 진행한 모양새였다. 6월13일 원구성은 마무리됐고, 역대 최단 시일 구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안 대표는 인터뷰를 앞두고 박 의원에게 “어떤 내용으로 (보도가) 나가야 할까요”라며 조언을 구해왔고 박 의원은 목포에서 올라와 안 대표와 장시간 상의해 로드맵을 짰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 통화는 잦은 편이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서서히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가 쟁점화했을때부터였다. 사드 배치는 외교·안보 문제로, 당 정체성에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박지원 의원 등 호남 의원 다수는 사드 배치에 반대했고 이는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안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대선이 임박해오자 “후보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찬성으로 당론이 바뀌었다. 대선 한복판에서는 ‘박지원 상왕론’이 둘 사이 틈을 벌렸다. 안 대표는 대북 제재 강화, 규제프리존법 통과 등을 앞세우며 보수층 표심을 공략하려 했지만 ‘햇볕정책’을 강조하는 박 의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엇박자’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캠프에서 안 대표 쪽 인사들은 “영남권으로 확대하는 전략에 박지원 의원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정체성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바른정당과의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가 일부 논의됐으나 제대로 진척되진 않았다. 이즈음 안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언제까지 안철수가 박지원과 정치를 할 순 없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월19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청년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하기에 앞서 서로에게 자신의 당 상징색으로 만들어진 목도리를 둘러준 뒤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결정타는 안 대표의 지난해 8·27 국민의당 전당대회 출마 선언이었다. 대선이 끝난 지 석달 정도 지났을 때였고, ‘문준용 채용비리 제보 조작’ 사건이 가라앉지 않았을 때였다. 박 의원은 “대선 때 티브이(TV) 토론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출마를 극구 말렸다. 하지만 안 대표의 뜻을 꺾지 못했다. 결국 포기하면서 박 의원은 대신 안 대표로부터 두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고 했다. “바른정당과 통합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과 햇볕정책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달여 뒤 안 대표는 정확히 반대로 행동했다. 바른정당과 합당하겠다고 했다. 안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당시 다수가 보통 예상했던 길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안철수가 비로소 진짜 정치인이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 의원은 안 대표를 향해 ‘구상유취(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등의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안 대표도 지지 않았다. 박 의원을 향해 “구태정치의 마지막 그림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 사람이 루비콘강을 건너기까지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년 가까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두 사람이지만 이제는 인간적 관계에서도 둘은 많이 멀어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두고 두 사람이 한창 싸우던 와중에 박 의원의 부인이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위로차 병원을 찾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문재인 대통령’ 난을 들고 병문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안 대표는 먼저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이후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모인 오찬 자리에서 일부 이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그날 오후 안 대표는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대표는 최근 박 의원과 관련한 질문에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지원 의원과 실제 멀어진 게 맞냐’는 질문에 그는 “가까웠었나요?”라고 반문했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냐,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냐’는 질문에는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잘…”이라고 말했다. 한 때 박지원 의원과 상의하며 ‘케미’를 자랑했던 안 대표는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통합반대파의) 민주평화당이 19석이라는 보도가 있는데 실제로 20석이 가능하다”는 박 의원의 관측에 대해 “지금까지 한 말 중에 그대로 된 게 별로 없다”고 일축했다. 안 대표의 ‘새정치’를 자신의 구정치와 결합시키겠다고 해왔던 박 의원은 “안철수의 새정치는 용팔이 구정치가 됐다. 어쩌다 사람이 저 모양이 됐을까”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말 애초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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