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지금의 보수는 신뢰도 잃었고 실력도 없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만장일치로 탄핵 인용(파면) 결정을 내린 지 1년을 하루 앞둔 9일, 제1야당 자유한국당 안에서는 이런 자조 섞인 평가가 나왔다. 탄핵과 대선 패배 이후 보수 야당은 반으로 갈려진 채 ‘보수 재건’이나 ‘개혁 보수’를 외쳐왔으나, 여전히 국민들의 눈길은 싸늘하다. ‘궤멸 직전’으로 보였던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대표가 당권을 장악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정당 지지율은 10% 안팎의 박스권에 머무르고 있다. 보수 혁신을 표방하며 갈라져나온 바른정당도, 국민의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으로 재탄생했지만 ‘고정지지층’을 확보하는 단계엔 이르지 못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답보 현상은 ‘구태 야당’ 이미지 쇄신에 실패한 탓이 크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 11월에서야 당 대표 직권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제명했으나,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대표적 친박 ‘실세’들도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물어 출당시켜야 한다는 당내외의 요구는 거부했다. 당에 남은 최경환·원유철·김재원·이우현 등 친박계 의원들은 줄지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외부(검찰)로부터의 청산 대상으로까지 지목되면서 ‘부패한 구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와의 안보 대립각을 세우는 것 외엔 유능한 야당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야당이 주장하는 이슈가 안보 외에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중도보수를 끌어와야 하는데, 중도보수는 안보보다는 경제나 성장 등의 이슈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홍 대표의 직설적인 화법이나 캐릭터도 지지자들과의 일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의원은 “보수는 실력있고 믿을 만하다는 것이 인식인데, 지금의 보수 이미지는 신뢰를 얻기도 어렵고 실력도 낮아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당 지도부 의원은 “수도권에서 당 대표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롭게 지지율을 끌어올릴 차기 리더·신진 정치인의 부재는 현재 자유한국당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자유한국당의 다수 의원들은 “(홍 대표 체제를 이어나갈)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입을 모은다. 중도·개혁적 의원모임이나, 초·재선모임이 사라졌다.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에는 새정치수요모임 등 젊고 개혁적인 의원들의 모임이 당내 야당 목소리를 상시적으로 내면서 차세대 리더들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오히려 초선들이 뒤로 물러서 있다. 재선·삼선 의원들보다도 더 나이가 든 느낌이다. 장기적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셈”이라며 “결국 과거 친박 공천의 유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배현진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영입 등을 영입하며 이미지 쇄신을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지방선거 ‘적폐청산’의 프레임에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맞서는 시도이기도 하다.
반면, 탄핵 1년을 맞아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몰아낸 촛불혁명의 제도적 완결은 개헌”이라며,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압박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해 대선 이전만 해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하자고 주장했던 자유한국당이 연일 개헌 지연 및 무산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13일로 예정된 청와대 국민헌법자문특위의 개헌안 발표 이전에 (국회에서) 최소한 개헌시기와 정부 형태 등 필수적인 사안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1년 전 광장에서 변화와 개혁을 염원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 국민들의 바람을 정치권이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유경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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