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국회 여야 5당 원내대표. 한겨레 자료사진.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이 대통령 비준을 거쳐 공포되기 전에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칠지에 관심이 쏠린다.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합의 내용이 정권 교체 이후 흐지부지됐던 만큼 이번에는 국회 동의를 통해 합의 이행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판문점 선언 내용을 저평가하는 탓에, 국회 동의 과정이 정쟁으로 흐를 수 있어 여권에서도 국회 동의 절차 추진에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2005년 제정돼 2006년 시행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은 남북합의서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 4조는 ‘남북합의서’를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로 정의하고, 국회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이를 토대로 문 대통령도 지난 3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국회 비준 동의를 받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합의 내용의 법제화를 통해 후속 이행을 철저히 하자는 취지다.
현재 여야 의석수만 보면, 국회 본회의에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이 올라올 경우 보수야당의 협조가 없어도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121석), 민주평화당(14석), 정의당(6석), 평화당 성향인 바른미래당 비례대표(3석), 민중당(1석), 무소속인 정세균 국회의장, 손금주·이용호 의원을 모두 합하면 148석이다. 판문점 선언에 긍정 평가를 하는 이들만으로도, 현재 국회 재적의원(293석) 과반 기준(147석)을 넘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정상회담 성과를 ‘위장평화쇼’로 격하하고 있어, 실제로 국회 동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이 의안 채택에 합의하지 않으면 동의안 상정 자체가 어렵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10·4 선언의 이행에 관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도 17대 국회에서 동의를 요청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다만 여당에서는 “정상회담을 놓고 국민의 성원이 커서 자유한국당이 거부만 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실제로 29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당론으로 동의안에 반대할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까지 섣부른 입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여지를 남겼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비핵화를 위해서 정부가 어떻게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지 보고 판단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당은 아직까진 국회 동의 절차 추진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의 한 의원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지 일단 법제처의 판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언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동의 절차가 녹록지 않으면 초당적 지지 결의안을 내는 등의 대안이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안정적, 지속적인 합의 이행이 담보되려면 국회가 담보하는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며 “초당적 지지를 통해 조약에 준하는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엄지원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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