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 한겨레 자료사진
“지지 후보 아직 못 정했어. 진주 하면 보수인데, 예전이랑은 좀 다르니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 자유한국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줄 아는데,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
지난 6일 경남 진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경남지사 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 대한 애증,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의심, 대안 부재에 대한 답답함 등을 호소하고 있었다. ‘경남의 티케이(TK)’로 불리는 진주는 자유한국당의 ‘철옹성’이자 더불어민주당의 ‘험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 진주, 경남 변화의 바로미터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이후, 역대 지방선거에서 경남은 한번도 민주당에 곁을 내준 적이 없다. 정권교체 여부와 관계없이 민주당 계열의 정당은 한번도 경남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 2010년 범야권 단일 무소속인 김두관 후보가 경남지사에 당선된 적은 있지만, 민주당 소속은 아니었다.
경남 지역에서도 진주는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 후보는 경남 전체에서 58.85%를 얻었는데, 진주에선 이를 웃도는 61.6%를 득표했다. 김경수 후보는 경남 전체(36.05%)보다 낮은 31.03%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진주 판문동 진양호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강아무개(59)씨는 “예전에는 선거 때 거의 빨간 옷(자유한국당)과 하얀 옷(무소속)뿐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파란 옷(민주당)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진주에서 김경수 민주당 후보와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의 표가 ‘5 대 5로만 나와도 획기적인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유한국당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가 5일 경남 사천읍시장 앞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 고 있다. 사천/연합뉴스
■ “여긴 뚜껑 열어보면 다 바뀐다”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를 통해 김해·양산 등 동부경남에서 통영·사천·거창·함안 등 서부경남으로의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진주는 서부경남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는 상징적인 지역이다.
지난 6일 진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그래도 자유한국당”이라며, 최근 경남에서 김경수 후보가 김태호 후보를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민주당에 한번도 내준 적 없어
경남지사 선거 바로미터
50대 이상 본심 잘 안 드러내
“여론조사는 젊은층 의견 반영”
“누가 돼도 똑같지…” 하면서도
뒤로는 “그래도 우린 한국당”
50대 이하에서는 변화 열망 커
만년 여당 ‘한국당 심판론’ 강조
“대통령 탄핵 책임지는 사람 없어”
“대구도 변하는데 이번엔 바꿔야”
후보 못 정한 부동층 고민 거듭
“김태호 전 지사는 일 잘할 것 같고
김경수는 젊으니 혁신적일 것 같고”
진주 중앙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70대 여성은 지방선거에 대한 시장 상인들의 분위기를 묻자 대뜸 “장사도 안되고 먹고살기도 어려워 선거에 관심 없다”고 잘라말했다. 실제로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주변 음식점들은 빈 곳이 많았고,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 음식점에도 손님이 셋뿐이었다. 60대 남성 손님이 “지금 여론조사에서는 김경수가 앞서간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들을 잘 안 드러내서 그렇지 여긴 뚜껑 열어보면 다 바뀐다”고 했다. 그제야 음식점 사장은 “그래도 우리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지”라고 나직이 말했다.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는 이도 여럿이었다. 진주역 앞에서 만난 양아무개(65)씨는 “나도 여론조사 전화가 두 번이나 왔는데 다 응답을 안 했다. 내 주변 사람들도 응답들을 많이 안 한다. 지금 여론조사는 젊은 사람들 의견이 크게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김태호 캠프 강기윤 총괄선대본부장은 8일 통화에서 “‘그래도 보수의 불씨는 살려놔야 하지 않겠느냐’는 표심으로 보수가 결집하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가 7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학교 정문에서 지지자와 휴대폰으 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 “대구도 변한다는데…”
진주에서 만난 시민들 가운데 50대 이하 젊은층에선 변화에 대한 바람도 여럿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진주에서 ‘만년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 대한 ‘심판론’을 강조했다. 과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가 탈당한 전력이 있다는 한 시민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농단으로 결국 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했지만 나라를 어지럽힌 데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보수세력들이 정치를 엉망으로 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아무개(45)씨는 “‘보수의 심장’인 대구도 변한다고 하는데 경남에서 이번에도 못 바꾸면 답 없는 거 아니냐”며 “이번에도 못 바꾸면 절망하고 가족들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떠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상대 본관 앞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구아무개(28)씨는 “홍준표 대표가 지저분하게 막말을 일삼는 거 보면 국정농단 세력인 자유한국당이 아직 죗값을 덜 치른 것”이라며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심판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모두 탐탁지 않은 ‘부동 표심’은 번민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조아무개(58)씨는 “김태호 후보가 경남지사를 했으니 일은 잘할 거 같고, 김경수 후보는 젊고 새로운 사람이니 혁신적으로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진양호에서 만난 윤아무개(62)씨는 “30대 중반인 아들이 예전처럼 당 보고 줄투표 하려면 투표장 가지 말라고 하더라”며 “선거 공보물도 좀 들여다보고 이번에는 심사숙고해서 찍을 생각”이라고 했다.
김경수 캠프 이철희 상임총괄선대본부장은 “민주당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 투표율을 높이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김태호 캠프 강기윤 선대본부장은 “그동안 보수 지지자들이 자유한국당에 대한 불신이 많았던 부분에 대해 자숙하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했다.
진주/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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