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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유세차도 없이 ‘뚜벅이’ 선거…‘바늘구멍’ 뚫은 청년정치

등록 2018-06-25 05:01수정 2018-06-25 11:02

분투하는 2030 정치

광역의원 26명·기초의원 85명 증가
전체의 5~6%…4년 전보다 갑절 늘어
유권자 꾸준히 만나 풀뿌리 다져
관악구의회 22명 중 6명이 청년
대부분이 여윳돈 없어 돈 빌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는 게 중요”
“개원하면 지역문제 적극 해결할 것”
선거철만 되면 원내 정당들은 청년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며 ‘반짝’ 청년 표심잡기에 나선다. 그러나 거대 정당이든 군소 정당이든 진정한 의미의 ‘인재 육성’에 나서는 일은 드물다. 최근 끝난 6·13 지방선거에선 정당으로부터 영입된 적도, 육성된 적도 없지만 자력갱생으로 기성 정당의 아성에 도전한 20~30대 젊은 정치인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이들의 힘겨운 자력 도전은 청년 정치인 육성에 소홀한 기성 정당에 강한 울림을 주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구의원 후보로 처음 선거에 출마한 김순옥(30·서울 용산다)씨에게 이번 선거는 모든 면에서 ‘맨땅에 헤딩’이었다. 유학을 다녀온 터라 지역 연고도 적었고, 보수정당 지지도 약했다. 당 상황 탓에 출마 후보가 많지 않아 오히려 청년들에게 많은 공천 기회가 온 것이 유일한 호재였다.

정치 신인들이 선거를 치를 때 가장 큰 장벽은 ‘돈·조직·정보’다. 특히 돈은 절대적이다. 구의원 선거만 해도 선거기탁금 200만원과 선거운동원 일당 등으로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김씨도 시민단체에서 일해온 터라 선거에 쓸 여윳돈이 없어 알음알음으로 돈을 꿔서 선거를 치렀다. 대신 유세는 알뜰했다. 유세차도, 선거운동원도 없이 가족들만 ‘뚜벅이’ 선거운동에 나섰다. 김씨는 “선거운동원을 쓰면 더 손이 많이 간다기에 진심으로 선거운동에 나설 가족들에게만 부탁했다. 부모님이 충남 아산에서 고추농사를 지으시는데 어머니가 오가며 선거를 도와주셨다”며 웃었다. ‘조직’이 없으니 그 흔한 후보 안내 문자메시지도 보낸 적이 없었다. 부족한 ‘정보’는 “현수막은 어디에 달면 좋으냐” “산악회 정보 좀 달라”며 경쟁 후보 쪽에 은근히 물어 챙기기도 했다.

바른미래당으로 구의원에 출마한 김순옥 후보가 장화를 신고 우의를 입은 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김순옥씨 제공
바른미래당으로 구의원에 출마한 김순옥 후보가 장화를 신고 우의를 입은 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김순옥씨 제공
2개월간 준비한 선거에서 김씨는 여야 양당 후보들에게 졌지만, 15.92%라는 의미있는 성적을 거뒀다. 많은 보수정당 후보들이 선거자금을 보전받을 수 있는 득표율 15%를 넘기지 못해 빚더미에 올랐지만 그는 선거자금을 보전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20~30대 당선인 수는 광역의원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20명)보다 26명 늘었고, 기초의원은 85명 늘어난 192명이다. 전체 당선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6%로 미미하지만 갑절로 늘어난 수다.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깜짝 공천으로 당선된 청년들이 늘어난 효과라는 지적도 있지만, 청년들이라고 해서 깜짝 발탁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다.

3수 만에 성공한 젊은 정치인들도 있다. 민주당 후보로 구의원에 당선된 차승연(40·서울 서대문마)씨는 2010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한 뒤 줄곧 서대문에서 풀뿌리 지역정치 기반을 닦았다. 주민참여예산·마을만들기·협동조합 등 ‘동네 이슈’에 그가 참여하지 않은 영역은 거의 없었다. ‘나번’ 후보로 나선 그를 향해 주위에선 “가번 후보가 파괴력 있게 (표를) 가져갈 것”이라며 걱정했지만 30대 청년기 대부분을 지역에 쏟은 그의 믿음은 배반당하지 않았다. 차씨는 “젊은 정치인들에겐 무엇보다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소속 주무열씨가 선거 기간에 지하철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주무열씨 제공
서울 관악구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소속 주무열씨가 선거 기간에 지하철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주무열씨 제공
현실적 전략을 세운 후보도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주당 관악구의원에 당선된 주무열(33·서울 관악라)씨는 민주당에 입당한 지 1년 만에 당내 경선에서 현역 구의원을 제치고 승리했다. 그는 서울대 노동자, 주변 상인, 배달 노동자 등과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이들을 민주당 권리당원으로 조직해냈다. 주씨는 “새로 정치에 입문하고, 기존 정당에서 출발하려는 이들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역이 스스로의 조직이 되어줄 당원인 것 같다”며 “청년들도 선거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역에 투신해 여러 사업들에 도전하고 주민들과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3번 도전 만에 관악구의원에 당선된 정의당 소속 이기중(38·서울 관악아)씨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두 차례 도전에서 고배를 마신 뒤 지역 방위협의회, 의용소방대에 가입하고 아파트 동대표도 맡으며 주민들과 만났다. 그는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취해야 한다”며 “청년 정치인이라면 새롭고 모험적인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꼰대’스러운 시각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주무열·이기중씨를 비롯해 22명의 당선인 가운데 20~30대 4명을 포함해 45살 미만 당선인이 6명에 이르는 관악구의회는 특히 이번 지방의회에서 ‘젊은 정치’의 가능성을 증명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씨는 “우리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청년 정치는 필요없다’는 실망감을 주지 않겠냐”며 “개원하면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등에 적극 나서며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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