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장병완(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2hani.co.kr
법사위 문제 ‘여론 환기’, 민주당 B
‘인기’ 국토·산자위원장 확보, 한국당 A
경제 상임위원장 ‘0’ 머쓱, 바른미래 C
선거제 개편 발판 마련, 평화와 정의 A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이 진통 끝에 어제(10일) 끝났습니다. 상반기 협상이 3당 교섭단체 체제에서 진행됐다면 이번 하반기 협상은 처음으로 4당 체제로 이뤄졌는데요. 그만큼 각 당의 수싸움이 더 복잡했습니다. 상임위 소집과 운영에 큰 권한을 행사하는 위원장 자리들을 두고 네 당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B
-경제 상임위원장 챙기며 선방
-법사위 문제 여론 환기 ‘성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에 운영·기획재정·정무·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국방·여성가족·행정안전·문화체육관광 등 8곳에서 상임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대부분 상반기 자유한국당이 위원장을 맡던 상임위들입니다. 당시엔 한국당이 여당이었습니다. 한국당은 여당 시절 법제사법위원장을 확보했지만 민주당은 이번에 논란 끝에 법사위를 계속 한국당이 맡도록 했습니다. 대신 기획재정, 정무 등 경제 관련 상임위를 사수하는 데 힘쓴 점이 눈에 띕니다. 문재인 정부 2년차를 맞아 ‘개혁 입법’은 여당 입장에서 시급한 과제가 됐습니다. 조세, 부동산, 공정거래 등 개혁 과제 대부분은 입법이 뒷받침돼야 가능합니다. 하반기 경제 상임위원장들을 확보한 여당이 얼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법사위원장은 야당에 넘어갔지만 이 과정에서 여론이 환기된 점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가진 법사위는 “‘상원’으로 군림하며 각종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통과를 지연시킨다”는 비판을 범여권 쪽에서 받아왔습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이 이를 강하게 지적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에 여야는 운영위 산하에 국회 운영 개선 소위를 구성해 법사위 권한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월권’ 논란에 대해 여야 입장 차이가 커, 소위에서 얼마나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내부적으론 불만도 적잖습니다. 이날 민주당에선 의원총회가 있었는데요. 의원들 사이에서는 ‘꿀 상임위를 자유한국당이 다수 차지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한 의원은 “국토·보건복지·산자위원장 중 2개는 가져왔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자유한국당이 좋은 상임위원장을 다 가지고 가는데 3·4당은 왜 가만히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오늘(11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에서 “협상 과정에서 아쉬움도 많았지만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여당으로서 40일 넘게 지속되는 국회 파행 사태를 방치할 수 없었다”며 “이제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 A
-외교·통일 ‘길목’ 확보 성과
-국토위, 산자위에 지역구 의원들 ‘방긋’
자유한국당은 법제사법·국토교통·예산결산특별·외교통일·보건복지·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환경노동 등 7곳에서 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민주당으로부터 외교통일, 보건복지, 국토교통위원장을 가져왔고 옛 국민의당으로부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옛 산업통상자원위)을 받았습니다. 우선 외통위가 눈에 띕니다. 올해 상반기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면서 외교·통일 이슈는 국회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됐습니다. 외통위원장을 차지한 한국당은 이와 관련해 정부 견제 역할을 하는 데 힘을 받게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 분야 문제에도 방점을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환경노동위원장을 확보한 것도 제1야당으로서는 성과로 평가됩니다.
무엇보다 산자위와 국토위를 모두 확보한 것이 눈에 띕니다. 두 상임위는 시대와 당을 불문하고 의원들 사이 인기 위원회입니다. 각종 이권과 사업이 많이 얽혀 있어 지역구에서 ‘홍보’ 활동을 하기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놓고 도로를 확보하는 사업들이 다 국토위와 연관돼 있습니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당 의원들 상당수가 국토위에 가려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종 에너지 공사들을 비롯해 산자위는 소관 기관만 58개에 이릅니다. 다 ‘알짜’ 기관들로 꼽힙니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문제가 유독 산자위 소관 기관에 집중된 것은 이런 맥락과 닿아있습니다. 상반기 협상 때와 달리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관할하는 부처(중소벤처기업부)가 신설돼 산자위에 추가된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정부 예산을 심의하는 예결위원장도 한국당이 확보했습니다. 지역 예산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 예결위는 의원들이 '서로 들어가려 하는' 상임위입니다.
법사위원장도 결국 사수했습니다. 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어제 “법사위 사수로 집권 여당이 입법 권력까지 장악하려는 것은 막았다”고 자평했습니다. 다만 이번에 확산된 ‘법사위 월권’ 논란은 일정 부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9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논의를 하기 위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가 회동 장소에 입장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바른미래당 C
-‘경제 정당’ 표방했으나 관련 상임위 ‘0’
-‘평화와 정의’와 캐스팅보터 경쟁은 ‘혹’
4개 교섭단체 가운데 제일 울상인 곳은 바른미래당입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존재감 ‘제로’의 성적표를 받은 바른미래당은 향후 좌표를 ‘경제’에 찍었습니다. 경제에 대안을 제시하고 민생을 챙기는 제3정당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신임 김관영 원내대표는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경제 관련 상임위원장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며 체면을 구겼습니다. 대신 정보위와 교육위 2곳을 맡게 됐습니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회 부의장 한 석을 지킨 것도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협상이었다는 게 당내 평가입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늘 의원총회에서 “경제 정당을 표방했고 경제 관련 상임위원장 배정에 관한 언급을 여러차례 했음에도 배정받지 못한 점에 대해 의원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상반기 국민의당은 산자위원장과 교문위원장을 맡아 “캐스팅보터로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쪼개지기 전 일입니다. 그 때(40명)에 비해 바른미래당은 의원수가 10명 줄었고, 민주평화당과 캐스팅보터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평화와 정의 A
-호남 맞춤형 농해수위 따내며 성과
-선거제도 개편 ‘정개특위’ 발판 마련
민주평화당(14석)과 정의당(6석)은 지난 4월 공동교섭단체를 결성하며 이번 협상에 대비했습니다. 교섭단체는 20석을 채워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3당인 바른미래당(30석)보다 10석이 적지만, 국회 부의장 2석 중 하나를 가져가려 하며 대등한 위치를 요구했습니다. 국회의장은 여당이, 부의장 2석은 의석수에 따라 야당들이 맡았던 점을 고려할 때 반영되기 어려운 카드라는 게 지배적 평가였습니다. 실제 의석 수를 볼 때 한 자리만 가능하다는 게 나머지 정당들의 입장이었습니다. 대신 평화와 정의는 이를 지렛대 삼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와 함께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을 따냈습니다. 민주평화당 의원들 대부분이 호남을 지역구로 둔 점을 감안할 때 농해수위는 ‘맞춤형’ 상임위라 할 수 있습니다. 정개특위도 나쁘지 않습니다. 소수 정당 입장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이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논의하는 곳이 정개특위이기 때문입니다. 천정배, 정동영 평화당 의원 등이 특히 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개특위를 기반으로 앞으로 목소리를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의당은 이번에 환노위원장 자리를 노렸으나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야권 환노위의 한 의원은 “환노위가 인기 상임위는 아니지만 여당에서도 향후 노동 정책에서 정부와 발을 맞추려는 점을 감안할 때 평화와 정의에 환노위원장을 맡기는 것에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환노위원장을 원한다”는 의사를 이번에 지속적으로 피력하면서 노동 분야 선도 정당으로서 홍보 효과는 톡톡히 누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상임위원장은 관례상 3선 의원들이 대개 맡는데요. 이제 각 당 안에서 누가 위원장을 차지할 것인지, 국토위와 산자위 등 인기 상임위에는 누가 갈 것인지 치열한 내부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국회는 13일 국회 의장단 선출, 16일 상임위원장 임명을 위한 본회의를 각각 열어 하반기 원구성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