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헌화·분향한 뒤 자리로 가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약자의 대변인’, ‘노동자의 벗’ 노회찬이 27일 ‘동지’들 곁에 묻혔다. 국회장으로 치러진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에는 때이른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3천여명의 시민이 찾아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노 의원의 운구차는 오전 10시 국회 앞마당에 도착했다.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 전 의원 등 진보정당 인사들이 참석해 동료인 노 의원을 추모했다. 불볕더위에도 노 의원을 ‘배웅’하러 나온 시민들 역시 영결식 내내 눈물을 훔치며 애도했다. 특히 그와 진보정당 운동을 함께 해온 심상정 의원이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다.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내겠다”고 말할 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영결식 뒤 유가족과 동료 의원들은 영정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510호 ‘노회찬 국회의원 사무실’로 향했다. 그의 마지막 등원에 동행한 동료 의원들은 이곳에서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진보의 영원한 등대’ 노회찬은 이날 민주열사들의 묘역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유쾌한 달변가인 그가 곁에 있었다면 어떤 말을 들려줬을까. 그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지금, 남은 이들의 말을 대신 옮겼다.
심상정(정의당 의원)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삼십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패배로 점철됐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우리는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이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있는 정당으로 발돋움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이정미(정의당 대표)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을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문희상(국회의장)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 싸움을 마다 않았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 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하셨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가 말해주는 대중 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노선덕(노 의원의 조카) 큰아버지를 따라 걸을 때 듬직했습니다.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같이 걷고 싶었습니다. 늘 스스로를 낮췄지만, 쉽게 대할 수 없었고, 늘 기대고만 싶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모를 때, 가장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큰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유시민(작가)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부인) 김지선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박중훈(배우) 평소에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을 잘하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 쓰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저에게 일러주셨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서,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거기에) 초지일관 일생을 던져서였습니다.
김영숙(국회 청소노동자) 여러 국회의원을 만나지만 노회찬 의원님은 특별했습니다. 복도에서 만나면 늘 따뜻한 미소로 반갑게 맞으며 손을 덥석 잡아주곤 했습니다.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이 사라졌을 때 흔쾌히 ‘정의당 사무실을 함께 쓰자’고 하셨고 해마다 여성의날이면 장미꽃을 건네며 응원해주었습니다. 자신의 일처럼 치열하게 싸워주고, 노동자와 진심으로 교감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의 삶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기중(정의당 구의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은 모두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를 닮고 싶었고,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진보정치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이 그랬을 겁니다.
아이디 ‘나단’(정의당 게시판) 의원님께서 한때 걸으셨던 용접사의 길. 저 또한 용접사입니다. 용접면을 쓰고 일하다 의원님의 비보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습니다. 뜨거운 쇳물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아이디 ‘불혹 넘어’(정의당 게시판) 늘 존경했습니다. 늘 응원했습니다. 당신의 30년간 말과 행동에서 제가 지지하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당신의 선택만은 지지할 수 없네요. 부디 편안하시기를. 대한민국 진보 노회찬을 사랑합니다.
이름없는 한 노동자(영결식 방명록) 평생을 고달프고 가련한 노동자 편에 서서 고생하신 의원님.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 사회에 깨끗하고 청렴결백한 그대여. 모든 의원들이 한사코 지키려 했던 국회 특수활동비마저 몸소 반납했던 그대여. 뭐가 바빠서 그리 일찍 가셨나요. 고통스럽고 험난했던 지난 굴레를 벗어나 이젠 정말 편안히 영면하시길.
이름없는 한 시민(빈소 포스트잇) 의원님은 ‘그들’의 것이었던 정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불타오르도록 뜨거웠던 정의감과 열정 속에서 풍자와 해학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당신을 진심으로 닮고 싶었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공감하고, 더 열심히 뜨거워져 제가 가능하다면 당신의 뜻을 이어가며 살고 싶습니다. 투명인간의 편에서 약자의 편에서 보통 사람의 편에서,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엄지원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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