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의 소위 가운데 노동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고용노동소위(노동소위)에서 배제됐다. 환노위는 지난 22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대표를 환노위의 2개 법안심사소위(노동소위, 환경소위)가 아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 넣는 것을 포함한 소위 배정안을 통과시켰다. 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협상 결과다. 정의당이 최근 민주평화당과 맺은 공동교섭단체 지위를 잃으며 소위 관련 협상에서 제외된 것이 비단 환노위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환노위 노동소위 배제’는 조금 다른 문제로 여겨진다. 정의당이 노동권을 최대 기치로 내세우고 있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당 대표인 이정미 의원을 20대 국회 전반기에 이어 하반기에서도 환노위에 전면배치한 것은 상징적 의미기도 하다. 그런데 정의당은 하반기 국회에서 노동 법안 소위 협의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처음 진입했던 2004년 이후 ‘노동계’ 진보정당이 노동소위에서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이정미 배제’가 어떤 의미인지 엿보게 해주는 한 장면이 최근 있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논의되던 지난 5월24일 밤의 일이다.
긴장감 돌던 소위 회의장…이정미 ‘고군분투’
5월24일 밤 10시, 국회 621호 환노위 소회의실 앞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 노동소위 위원 11명이 모이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등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기 상여금은 물론 식대, 교통비, 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모두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넣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에서도 이에 찬성하는 기류가 흘렀다. 반면 정의당과 노동계는 ‘노동자에 피해를 전가하는 개악’이라며 반대했다. 이날 밤 전경 버스 수십대가 국회 주변에 배치됐고 전경들은 방패를 들고 국회 정문을 막았다. 국회 관계자들은 노동조합 등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국회 정문 앞 민주노총의 시위 소리가 국회 안에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회의장에 먼저 도착한 건 이정미 의원이었다. 노동소위에서 유일한 ‘정의당’ 소속 위원이다. 강병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진국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속속 도착했다. 심상정, 윤소하, 김종대 등 정의당 의원들은 환노위가 아님에도 소위 회의장에 들어와 회의 테이블 뒤쪽 보좌진 자리에 앉았다. 심 의원은 “하도 노동자들이 걱정해서 왔다”고 했다.
회의가 시작되려 하자 이정미 의원이 먼저 입을 뗐다. 굳은 표정이었다. “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제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회의 시작 발언을 준비해온 모양이었다. 국회 안에 들어오지 못한 목소리를 대신 전하려는 것이었다.
“비공개때 하시죠.”
임이자 노동소위 위원장(자유한국당)은 “지금 회의 시간도 좀 늦게 시작됐는데 비공개로 시작하겠다”며 “언론인 여러분은 퇴장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회의장 문은 굳게 닫혔다. 간간이 큰 목소리가 새어나왔지만 누구 목소리인지 정확히 알긴 어려웠다.
이 의원이 다른 당 의원들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곧이어 배포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드린다. 최저임금 산임범위에는 1년 연봉 2000만원, 한달 170만원~180만원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걸려 있다. 하지만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모두 산입 범위에 넣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그 분들에게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임금 인상이 없게 된다.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내 임금은 동결되는 이 이상한 법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망은 송두리째 사라지게 된다.…노동소위의 존경하는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부디 저임금 노동자도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오늘 소위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밤 11시25분, 소위 회의장 문이 열렸다. 정회였다. 이정미 의원이 가장 먼저 빠져나왔다. 굳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 말씀만 해달라’는 기자들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회의가 재개되고, 날짜는 밤 12시를 지나 25일로 넘어갔다.
5월 24일 밤 10시부터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여야 소위 위원들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심상정, 김종대, 윤소하 등 정의당 의원들은 환노위 소속이 아니지만 "노동자들이 걱정해서 왔다"며 회의 일부를 참관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힘겹게 기록에 남겨진 ‘소수의견’
자정을 넘겨가며 안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며칠 뒤 공개된 소위 회의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꼭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가는 경우라고 법학자들도 보고 있지 않다”는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발언에 이정미 의원은 “법학자 전부 다 그렇게 판단하냐?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확인했다. 호도하지 말라. 이건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이정미 의원 말에 일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저렇게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쉽지 않다”고 하자, 이 의원은 “노동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하 의원은 “그럼 나중에 그것은 사례를 제시해가지고…”라고 했고, 이 의원은 “지금 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 권리를 갖지 못하는 노동자들, 밀린 임금을 받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정부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의원 여럿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안건은 표결에 부쳐졌다. 이정미 의원과 한국노총 출신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나머지 9명은 찬성이었다.
임이자 노동소위 위원장 : 그러면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이정미 의원 : 위원장님!
임이자 위원장 : 해당 법률안의 내용을 통합하고….
이정미 의원 : 오늘 그렇게 강행 처리 하지 않겠다고….
임이자 위원장 : 이의 없으십니까?
이용득 의원 : 이의 있습니다.
임이자 위원장 : 이의 없으시면….
이용득 의원 : 이의 있다니까요!
임이자 위원장 : 이의 있으신 분들 소수 의견으로 남기고요. 이의 없으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탕탕탕’. 새벽 2시8분 의사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밖으로 들렸다. 결국 정기 상여금은 물론 식대, 교통비, 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모두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넣기로 결정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소위 위원들 다수가 찬성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회의장을 나오며 “오늘 그래도 잘 됐네. 서형수 의원(더불어민주당) 합리적 제안 덕에…”라고 말했다. 그는 “소수 의견이 두 사람 있었는데 타협이 필요할 땐 해야 하는 게 국회다”라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저임금 삭감반대' 손팻말을 컴퓨터 화면 뒷면에 붙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는 기본적으로 상임위원회, 그 안에서도 개별 소위 결정을 기반으로 굴러간다. 최저임금 등 예민한 쟁점 사항의 경우 각자 ‘지도부’ 협의를 마친 최종 입장을 각 당 소위 위원들이 회의장에 들고 온다. 사실상 법안의 중요한 방향이 법안심사 소위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노동소위는 노동 관련 입법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새벽 노동소위에서 결정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직후 환노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최저임금’의 경우 주목도가 높았지만 대개 안건의 경우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처리되곤 한다. 한 재선 의원은 “소위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뤄지는지 아느냐”며, 기자에게 “언론이 소위 회의에 직접 와서 취재도 하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수정당이 배제된 채 논의가 진행될 경우 ‘다른 목소리’가 삐져나오기 더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비록 결정을 바꾸진 못했지만 이정미 의원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뜻을 국회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언론에 이런 목소리가 크게 보도됐다. 또 소위 회의록에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게 했다. 이정미 의원이 노동소위에 없었다면 소수 의견이 이만큼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다른 당 입장에선 이정미 의원이 없었다면 소위 진행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피 상임위’ 환노위…“소신 의원은 왜 배제냐”
이후 7월부터 하반기 국회 원구성 논의가 시작됐다. 정의당에선 이정미 의원이 그대로 환노위를 지켰다. 다른 당은 조금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환노위에서 나가겠다는 의원에 비해 들어오겠다는 의원이 많지 않아 정원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연결되는 국토교통위원회의 경우 희망 의원이 몰렸다.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었다. 바른미래당의 사정도 비슷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7월17일 의원총회에서 “환노위에 지망하는 분이 안 계셔서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승적으로 환노위 배정을 수락해 상임위 배치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였다. ‘환노위 수락’이 희생처럼 여겨진 것이다.
이즈음 환노위의 한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환노위 엑소더스’가 진행중이다. 원래 기피 상임위인데 더 심해졌다. 일단 지역구에 떨어지는 게 거의 없고, 후원금도 잘 모이지 않고, 위원 숫자가 적어 발언 기회도 많이 돌아와 준비할 것도 많다. 게다가 지난 번 최저임금법 통과 뒤엔 찬성한 의원들 리스트가 돌아다니면서 욕을 먹었다. 그래서 더욱 안 하려고 한다.”
이렇게 ‘겨우’ 채워진 환노위에서 누구보다 의욕적인 이정미 의원은 노동소위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됐다. 심상정 의원은 22일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상임위, 그래서 상임위 중 가장 적은 정수조차도 겨우 채우는 상임위인데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위해 소신을 갖고 일하고자 하는 국회의원이 왜 배제돼야 하느냐”며 “이런 행태는 한마디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횡포”라고 밝혔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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