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 잘하는 게 최대의 목표다.” 민주당의 최고위원에 당선된 박주민(오른쪽), 김해영(왼쪽) 최고위원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잔디밭에서 <한겨레>와 만나 자신들의 포부와 정치철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지난 2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7선인 이해찬 의원의 당대표 당선이 아니었다. 40대 초선인 박주민 의원과 김해영 의원이 1위와 4위로 지도부에 뽑힌 최고위원 경선이었다. 이들의 지도부 입성은 기존 정치문법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특정 계파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은데다 정치 스타일도 기존과 다르기 때문이다. 박 최고위원은 사람들과 술 마시고 밥 먹으면서 유대를 다지는 방식과 거리가 먼 대신 자기 일에만 매진하는 별종으로 원래 유명하다. 김 최고위원도 의원회관 구내식당에서 ‘혼밥’을 잘한다. 법안 발의에서도 박 최고위원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진보적인 젊은 일벌레 두 명이 여당 지도부에 동시에 입성한 것은 새로운 정치가 여의도에서 통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일까. 27일부터 최고위원 업무를 시작한 두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각자 바쁜 사람을 더구나 한꺼번에 만나야 했으니 시간 잡기가 배로 힘들었다. 아주 늦은 저녁 시간도 좋다고 제의했으나, 밤에도 시간을 뺄 수가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을 비롯해 새 민주당 지도부가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는 일정 뒤 겨우 짬을 내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28일 오후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회의실에서 했다.
한때 ‘새정치’라는 말이 유행했다. 여의도의 기존 정치 방식과 그런 정치를 수행하는 기성 정치인을 바꾸자는 의미였지만, 막상 새정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조차도 설명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정치를 외친 정치인 자신이 정치판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새정치 구호도 퇴색해 갔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새정치’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기존의 정치문법과 다른 양상 때문이었다. 첫째, 초선의 40대 정치인인 박주민(44), 김해영(41) 의원(이하 호칭 생략)이 1위와 4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40대 초반의 정치인 두 명이 정당 지도부에 동시에 들어간 것은 우리 정당사에서 유례가 드물다. 둘째, 두 사람은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사람들을 묶어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의정활동에 올인해 왔다. 사회 갈등 현장을 찾거나 지역 유권자를 만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셋째, 백팩을 메고 다니거나(박주민) 수행 비서를 별도로 두지 않는 등(김해영) 두 사람은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대의원 및 당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표를 얻는 방식이 아닌, 자신이 하는 일만으로 당 지도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새 모습이 아닐까.
“우리 둘은 당의 활력소가 되고 어려울 때 당을 지키는 마지막 ‘스토퍼’가 됐으면 좋겠다.” “많이 공부하자.” 김해영 최고위원(왼쪽)과 박주민 최고위원이 지난 28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외양은 대조적이었다. 김해영은 ‘곱게 자란 도련님’ 같았고, 박주민은 ‘촌티’가 조금 나는 서민풍이었다.(박주민의 별명 중 하나는 ‘거지갑’이다.) 하지만 김해영은 부산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고, 박주민은 서울 중산층 출신으로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특목고(대원외고)를 나왔다.
“이승만·박정희 참배, 통합정치 위해 필요”
분위기를 풀 겸해서 겉모습이 서로 바뀐 것 같다는 우스개 말부터 던져봤다. 김해영은 웃으면서 “지역구에서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박주민은 “김 의원은 김경수 경남도지사보다 더 잘생긴 것 같다. 김 지사가 ‘경수짱’이니 김 의원에게는 ‘해영짱’이라는 별명을 붙여줘야겠다”고 했다. 진지 코드가 몸에 익은 사람들이어서인지 유머감각은 별로였다.
“학생운동할 때 혁명이 아니라 생활 속 진보를 추구했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28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옷깃에는 국회의원 외에 세월호, 4·3 사건, 청소년 참정권 관련 뱃지가 달려 있으며, 오른손목에도 세월호 등 각종 사건과 단체를 상징하는 팔찌 5개가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며칠 안 됐지만, 평의원으로 있다가 당 지도부의 일원이 돼 보니까 어떤가.
박주민(박) “아직 최고위원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김해영(김) “정치를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마음이 새롭다.”
-국립묘지에 가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묘소도 참배했는데 사전에 논의했나?
박 “미리 연락은 받았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참배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에 이미 했기에 새로 심각하게 논란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 행사가 괜찮았다고 생각하나.
박 “전직 대통령들은 공도 과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당으로서 통합을 강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의미 있는 행보였다고 본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보훈을 강조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골고루 강조하는 것도 마음에 들더라. 우리 역사에서 그런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김 “집권 여당의 당 대표단이 취임 첫날 역대 대통령의 묘소를 다 참배하는 것은 국민통합과 협치를 위해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박주민은 2006년 변호사가 된 직후부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한복판에 늘 섰다. 해군기지 건설로 정부와 맞섰던 제주 강정마을, 송전탑 반대 투쟁을 했던 경남 밀양에서 그는 주민들 편에서 싸웠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에는 유가족 법률대리인으로 유가족들과 함께 광화문과 국회 농성장 등을 지켰다. 김해영은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2011년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을 때부터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그런 경력을 고려하면 두 젊은 정치인의 생각과 사고는 유연했다.
“학생운동을 하지 않은 데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28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똑같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등장은 1970년대 김대중·김영삼의 40대 기수론을 생각나게 한다. 이번 전당대회 당선이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김 “최고위원회가 원내대표를 포함해 9명으로 구성되는데 신-구, 노-장 조화를 당원이나 국민들이 많이 고려한 것 같다. 우리 당이 백년정당으로 뿌리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젊은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목소리를 강하게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당내에서 있었던 듯하다.”
박 “세대교체 바람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 당 대표는 7선 의원이 됐듯이 바람이 불어서 세대교체가 확 이뤄진 것은 아니다. 노-장의 조화, 다양한 목소리의 조화로 보인다.”
-표를 받아야 하는 전당대회에 정치 경험이 짧은 초선의원이 도전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박 “저는 지난해 말부터 고민했다. 지방선거 이후에 당이 분명히 어려워질 것이고, 반면에 해야 하는 일은 많아질 것이라고 봤다. 그런 상황에서 뒤에 물러나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 보고 느꼈던 것을 실천하면서 당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어려워진 상황에서 당의 소통이 중요한데 그런 것은 내가 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놓고 얘기하면 남들이 비웃을 수도 있어서 속으로만 고민했다. 하하.”
김 “저는 청년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데 청년 당원들의 출마 요청이 있었다. 청년대표 최고위원 제도가 없어지면서 청년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또 권역별 최고위원 제도가 사라짐에 따라 지역을 대표할 사람도 필요한데 그런 일을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둘은 경쟁자였는데 선거 때 경계를 많이 했나.
박 “각자 최선을 다하느라 아무 정신이 없었다.”
김 “경쟁관계가 아니다. 저는 선거 때 인터뷰 등에서 우리 두 사람이 반드시 같이 당선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당의 활력소가 되고 어려운 국면이 오면 당을 지키는 마지막 ‘스토퍼’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앞으로 욕먹을 일만 남았을지도…”
박주민의 국회 사무실 벽에는 그가 2016년 5월30일 국회의원이 된 이후 주관한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포스터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몇가지 빠진 것이 있는데도 91개나 붙어 있다. 거의 한 주일에 한 번꼴로 법안을 만들기 위한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연 셈이다. 이렇게 해서 그가 지금까지 대표발의한 법안만 107건이다. 박주민 의원실의 김인아 보좌관은 “토론회를 많이 주관하다 보니 후원금이 남들보다 많이 들어오는데도 늘 모자란다”고 했다. 김해영도 지금까지 모두 96건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청소노동자 정규직화 법안’과 ‘장준하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김해영 의원실의 강동기 보좌관은 “우리가 낸 법안들은 단어나 문구 하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거나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2016년 5월 20일 국회 정문 앞에서 박주민 변호사(오른쪽 두번째)가 세월호 유가족과 국회의원 당선자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특별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임기 2년이 지났는데 초심이 잘 유지되고 있나.
박 “정치 영역에서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얘기한다고 잘되는 것은 아니다. 제 마음속의 것을 실현하려면 어느 정도 전략적으로 유연하거나 또는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어느 게 ‘초심’이고 어느 게 ‘전략’인지 헷갈린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사는 것 같다. 매번 고민해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이 내가 갖고 있는 초심이라는 큰 방향에 맞게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판단만 하는 것인지 항상 자신이 없다. 그런 면에서 요즘 김대중 대통령님이 대단해 보인다. 오랜 세월 정치하면서 굴곡이 있기는 했지만 딱 평가가 나지 않나. 저도 나중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과 걱정이 많다.”
김 “저도 국회의원이라는 게 특별한 직업이 아니라 여러 직업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경험이 쌓일수록 좋은 면도 있지만, 기존 관행에 젖어가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정치권의 기존 관행은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게 매우 많다. 그래서 그런 관행에 빠지지 말자, 국민 목소리와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하루를 국회의원으로 있더라도 제대로 하자는 다짐을 스스로 하곤 한다.”
민주당 새 최고위원 박주민, 김해영
기존 여의도 문법 안 따르는 정치인
계파·조직 없고 스킨십보다 가치
107건·96건 법안 발의 등 일중독
‘거지갑’ 별명의 진보 이미지 박주민
“정치는 옳은 말 한다고 다 아니야
성과 내려면 초심 가지되 유연해야”
“혁명 아닌 생활 속 진보 추구해와”
부산 인권변호사 출신의 김해영
“국회의원도 여러 직업 중 하나
하루를 해도 제대로 하려고 다짐”
“당론과 다른 목소리 낼 수 있어야”
김해영 의원(가운데)이 2016년 8월 16일 자신의 1호 법안인 ‘장준하 사건 진실규명 관련 특별법’을 장준하 선생 장남 호권(왼쪽)씨 등과 함께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그런 관행은 어떤 게 있나.
김 “국회 특수활동비가 대표적이다.”
박 “전당대회 유세 때도 특활비를 폐지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서 지도부와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특활비처럼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관행은 오히려 쉬운 문제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야당일 때 했던 주장과 달리 여당으로서 다르게 움직이는 것 등이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제 고민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큰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믿음은 있다. 그런 믿음을 유지하면서 당이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게 최고위원의 역할이지 아닌가. 일반 의원이면 어떤 얘기든지 할 수 있고 뒤에서 궁시렁거릴 수도 있는데 최고위원은 결단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기에 가슴이 답답하다. 어쩌면 앞으로 욕먹을 일만 남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30년 이상 견지하면서 간다는 게 중요하고, 그걸 끝까지 잘하는 게 초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잘할 수 있을까가 제 고민이다.”
초선의원에게 흔한 확신과 소신 등 단호함보다는 갈등과 고민, 여러 상황에 대한 고려 등 다선의원의 특징인 신중함이 더 느껴졌다. 내친김에 당론과 개인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물었다.
박 “저는 싸울 때는 싸운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소환제와 관련한 당헌을 만들 때 많은 분이 소환제를 반대했지만, 저는 의원총회에서 한 시간 반 동안 혼자 도입을 주장했다. 계속 발언을 했더니 당직자들이 나오면서 박주민 의원이 저러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하더라. 특활비 폐지 때도 줄기차게 세게 얘기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안에서 싸워야지 밖이나 언론에 대고 이 당은 이상해요, 이 지도부는 이상해요라고 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당이 너무 곤란해하고 힘들어하면 제 생각과 안 맞아도 따랐던 경우도 좀 있다.”
김 “사실 당론으로 정하는 법안은 그리 많지 않다. 당론을 정하는 것은 한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인데 그래도 그것이 개인의 가치관과 전적으로 다를 때는 정치인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박, 현안 해결에 도움 줄 당 선택
다음 정치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도 ‘정답’을 내놓았다.
김 “다음 총선을 책임지는 지도부의 일원이 됐기에 민생 입법과 개혁 입법을 완수하도록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가 가장 중요하니까 다음 총선에서 우리 당이 과반이 되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당원과 당이 잘 소통되게 해서 당원들의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당이 강해지면서 다음 총선도 그렇고, 정부 정책 등을 당이 뒷받침할 수 있다.”
31일 오전 국회 본관 앞 잔디밭에서 사진 촬영을 겸해서 한 추가 인터뷰 때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는데 두 분의 정치적 꿈은 뭐냐’고 다시 던졌지만, 역시나 ‘말려들지’ 않았다.
김“오늘 아침 샤워하면서도 ‘지금 하는 일만 열심히 하자, 다른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일과 공부만 하려고 한다.”
박“어떻게 해야 최고위원을 잘할지도 모르는데 꿈이 어딨나. 다음 스텝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은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하하. 겸손을 떠는 게 아니라 저는 정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최고위원을 잘하는 게 최대 목표다.”
-(이하 28일 인터뷰) 정치적으로 두 분은 지금 우리 정치권의 주류로 있는 이른바 ‘386세대’ 이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세대와 차이가 뭔가.
박 “이른바 386세대, 특히 그 세대의 정치인은 과거 학생운동의 대장들이었다. 저 같은 경우는 학생운동을 했지만 대장은 아니었다. 우리 세대는 학생운동 방식도 달랐다. 혁명이 아니라 생활 속의 진보 또는 개량으로 불리면서까지 사회적 진전과 변화를 추구했던 세대들이다. 얼마 전 <한겨레> 성한용 기자가 쓴 이해찬 대표에 관한 기사를 봤더니 이 대표가 언젠가 자신은 진보에 도움을 주는 개량주의자라고 말했던데 저도 그런 식의 학생운동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앞선 세대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김 “저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안 해봤다. 거기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지역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변호사 시절 법정뿐 아니라 거리에서 약자들의 편에서 싸운 박주민은 오래전부터 진보정당이 영입하고픈 인물 가운데 1순위로 꼽혔다. 여러 차례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2016년 1월 민주당에 입당했다. 부산의 인권 변호사 김해영도 진보적인 녹색당에 관심이 많았지만, 결국 민주당을 택했다. 둘 다 명분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라기보다는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인 셈이다.
-두 분 성향으로 보면 진보정당에 가는 것도 자연스러웠는데 왜 민주당이었나.
박 “당시에 제가 관여하고 있었던 현안이 굉장히 많았는데 거기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당시 민주당이 분당되면서 당이 건강해지는 등 많이 변하고 있었다.”
김 “2012년 대선에 문재인 후보가 첫 출마했을 때 저는 부산시당 법률지원단과 홍보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가치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당 사람들과 교분을 맺었다. 입당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박 의원은 어렵게 결심해서 입당했는데 공천 때문에 속을 끓였다. 마지막까지 당 지도부(김종인 비대위원장)에서 공천을 주지 않다가 마지막날 밤늦게 서울 동작갑 지역을 제의했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했다.
박 “정치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정치를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동작갑에는 이미 김병기 의원이 거론되고 있었다. 저랑 비슷한 시기에 영입된 김병기 의원과는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당의 지방 행사에 함께 다니면서 싹튼 전우애, 동지애 같은 게 있었다.” 박주민은 늦은 밤 김병기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리면서 자신은 출마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러나, 다음날 동작갑은 김병기로 됐고, 박주민은 서울 은평갑 공천자로 확정됐다.
김, 빗속 10시간 유세로 분위기 바꿔
-김 의원은 2014년에 부산 연제구의 민주당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지지가 부산에서 워낙 강고해서 당시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였다. 21대 총선(2020년)까지 내다보고 수락했나.
김 “우리 지역은 오랫동안 지역위원장이 없는 사고 지구당이었다. 핵심 당원들이 저를 잘 봤는지 함께 연제구를 가꾸자고 제안했지만, 변호사 사무실 개업한 지도 얼마 안됐고 해서 처음엔 거절했다. 6개월 가까이 요청을 받으면서 제 생각도 변했다. 변호사는 구체적 사건에 한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반면에 의원은 입법을 통해 국민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저 같은 사람이 국회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원장직을 맡을 때는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목표로 했다.”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건 상당히 의외다.
“저를 아주 가깝게 도와주는 분들조차 이번에는 연습 삼아 해보고 다음에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저는 반드시 이번에 이겨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이 믿지를 않으니 이것을 어떻게 돌파할까를 고민했다.”
-어떻게 해결했나.
“예비후보로서 중심가인 연제구 연산로터리에서 ‘행복한 날 좋은 아침 되세요’라는 글을 쓴 피켓을 매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 비가 종일 왔는데도 물도 한 방울 안 마시고 10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시민들에게 90도 절을 계속 했다. 그러고 나니까 지지자를 포함한 연제구 전체 분위기가 바뀌더라. 이번에는 민주당 후보가 제대로 붙어보려는 모양이구나라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번에 붙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날 허리에 무리가 와서 사흘간 주사를 맞는 등 말 못할 고생을 했지만, 분위기 반전은 이뤘다. 하하.”
-지역구 의원은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의정활동뿐 아니라 동네 정치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중앙에서 바쁜 사람들은 지역활동을 등한히 하기도 하는데 지역구 관리는 어떻게 하나.
박 “저는 당의 가치를 넓게 알려서 지역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민 아카데미를 5기째 진행 중이고, 통일학교에 이어 환경학교를 열 계획이다. 또 지난해에는 매달 탈핵 문화제를 열었다. 은평 평화의 소녀상 운동을 해서 지난 14일에 만들었고, 대북 인도적 지원 토론회와 국민소환제 서명운동 등도 지역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과 함께 하고 있다. 이상한 애가 국회의원으로 오더니 우리가 하는 일까지 다 하고 있다고 시민단체가 깜짝 놀랄 정도다. 하하. 또, 매달 두 번씩 민원인의 날을 열어 민원 청취도 하고 있다. 이게 꽤 소문이 나서 지금은 전국에서 찾아온다.”
김 “저는 시장이나 상가, 경로당을 제가 직접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민심을 듣고 민원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단점은 많은 분을 만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보완책으로 수요일 정책간담회를 열어서 현안 문제를 논의했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지역구 주민들이 김해영에게 붙여준 별명은 ‘두발로 의원’이다.
이들의 일정표를 보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다. 보통사람은 견디기 힘든 삶이지만, 프로 정치인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긴다. 이 점에서는 두 젊은 정치인도 프로였다.
김 “변호사 때보다 잠을 훨씬 적게 자지만, 컨디션은 더 좋다. 이 말을 하니까 정치인으로 타고난 것 아니냐고 하더라. 하하. 아이들을 주중에 보지 못하는 게 힘들지만, 다른 것은 괜찮다.”
박 “변호사 때는 아무리 바빠도 밤늦게 친구들과 소주라도 가끔 한잔씩 했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이 없다. 동료 의원들과도 밥 먹고 술 먹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이번에 출마했더니 동료 의원들이 너는 나하고 밥이라도 한번 먹어봤냐고 하더라. 그래도 좋은 점은 예전에 변호사 할 때는 거리에서 활동할 때도 아스팔트에서 노트북을 꺼내서 소장을 쓰는 등 투잡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활동만 열심히 하면 세비가 나오는 원잡이라는 점이다.”
고교까지 공부벌레였던 박주민
돈 버는 장사꾼 꿈 대학 때 버려
“학생운동 대학시절이 가장 행복”
고모집 얹혀살던 흙수저 김해영
집안 일으키려 법대 진학 후 고시
“사법연수원 동아리가 인생 전환점”
대학 1학년 때인 1993년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월출산으로 엠티를 간 박주민 의원(맨 오른쪽). 박주민 의원실 제공
박주민은 1973년 11월 서울 성북구 삼선교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교장 선생님, 아버지가 공무원인 중산층 집안이었지만, 할머니가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가 나서 어릴 때 중랑구 신내동과 망우동 등 변두리 동네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는 돈 버는 장사꾼이 되고 싶었다. 고교 때는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종일 앉아서 책을 봤고, 수학여행 때도 단어장을 들고 가서 공부했다. 외모와 여학생에 신경을 쓰면 공부를 등한시할까 봐서 거울도 한 번 쳐다보지 않았다. 길에서는 땅만 보고 다녔다. 그는 대학(서울대 법대)에 들어와서는 혼자 동떨어져 지냈던 고교와 재수 시절을 후회하면서 어릴 때의 활발했던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별종의 기원> 2017, 유리창)
대학 1학년 때 체육대회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주민 의원(왼쪽). 박주민 의원실 제공
-1993년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고교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법대신문사에 들어가면서부터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가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삶은 죽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인가.
박 “그렇다. 동아리 가입이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인 것 같다.”
정치 출발점 된 법대신문사, 노동법학회
-고교 선배가 법대신문사로 이끌어준 것으로 아는데 괜찮은 인연이었다고 보나.
“그렇다. 그 선배를 당시에 안 만났다면 저도 대원외고 나와서 법대 간 다른 친구들처럼 소년등과해서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는 누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물으면 대학 때라고 대답한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다. 1학년 때 철거 반대 투쟁 등에 가면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2학년 여름에 갑자기 귀가 트이더라. 집회에 가면 집회 발언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가슴에 와닿았다.”
김해영 의원(맨 오른쪽)이 중앙중학교 시절인 1990년 11월 교내 합창대회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김해영 의원실 제공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해영은 어려서부터 동생과 함께 부산진구 당감동의 고모 집에 얹혀살았다. 아버지는 돈을 벌러 나가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았고, 고모도 장사하기에 바빠서 점심을 굶기 일쑤였다. 고교를 경남 거제로 진학했지만 얼마 안 돼 그만두고 방황했다. 이듬해 고모 집 근처의 개금고에 복학했지만, 고2 때 반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성적이 엉망이었다. 고3 때는 아예 직업반을 선택해서 미용기술을 배우는 등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대학을 가야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입시 50일을 남기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부산대 법대에 입학(1996년)했다. 대학에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암 투병하던 아버지가 작고(2007년)한 뒤 고시공부에 매진해 200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6년 2월 부산 개금고 졸업식 때 친구와 함께 있는 김해영 의원(왼쪽). 김해영 의원실 제공
-대학 때까지만 해도 개인 출세에 치중했는데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회에 눈을 뜬 것 같다.
김 “맞다. 사법연수원 동아리 가운데 노동법학회에 가입하면서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다.”
-노동법학회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누가 권했던 것은 아니고 제가 스스로 갔다. 자본을 가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인간관계를 활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방식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땀 흘리는 사람이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보상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법학회를 찾아갔다.”
-노동법학회는 매우 진보적인 학회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사람이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동아리 대신에 운동권이 많은 데를 찾아간 게 의외다.
“처음 노동법학회에 갈 때는 학회 성격을 정확하게 몰랐다. 하하. 이제부터라도 정직하게 살면서 정의로운 삶의 끈을 이어나가야겠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갔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된 박주민(오른쪽), 김해영 최고위원이 31일 오전 <한겨레> 인터뷰를 마친 뒤 모처럼 맑게 갠 국회 본청 앞 광장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연한 선택의 결과로 정치의 길에 들어선 두 사람. 열린 사고를 하는 것과, 정치를 보는 시각은 비슷했다. 또 경쟁 관계보다는 동지로서의 관계가 더 강해 보였다.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변하고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서로 경쟁하게 되더라도 새로운 정치의 틀을 확장하고 튼튼히 하는 역할은 함께 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