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는 대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국회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간 국회 불신 탓에 의원 정수 확대 공론화에 주저하는 분위기가 정치권에 강했지만,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들이 이런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다. 정당득표율에 맞춰 의석수를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려면 현행보다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세비 동결 후 의원 정수를 확대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의장 제안에 여야 정당들은 즉각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담당하는 1인당 국민 수는 17만1천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높다”며 “현역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하는 결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정원을 늘려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 의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의원 정수를 30명가량 늘려야 한다. 의원을 늘리는 데 국민 반감이 있을 수 있어 현재 의원 300명이 쓰는 예산을 330명이 쓰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과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지난달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의원 수를 360명 수준으로 증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수를 나눈 뒤, 그 배분된 의석수를 지역구 당선자로 먼저 채우고 부족분은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이 제도 도입을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 확대가 불가피하다.
현재 지역구 의석(253석)과 비례대표 의석(47석) 비율은 ‘5.38 대 1’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2 대 1’로 조정하자는 의견이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2015년 이 비율을 ‘2 대 1’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고했다.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는 방법은 두가지다. 현행 의원 정수 300명은 고정한 채 지역구 의석수를 줄인 뒤 그만큼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것도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하는 안이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의 열쇠를 쥔 현역 의원들이 지역구를 줄이는 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방법은 지역구 의석수를 고정하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방법이다. 이러면 총의석수는 비례대표 의석수 증가만큼 늘어난다. 최근 정치권에선 이 방식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기류다. 그러나 걸림돌은 국회를 불신하는 국민들이 의원 수 확대에 부정적이란 점이다. 정치권에서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이 예산을 늘어난 의원들이 나눠 쓰자’는 해법을 내놓는 이유다.
정치학자들 사이에선 이런 방안이 현실적인 것은 물론 정치발전을 위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는 “연동형 비례제를 시행하면 개별 의원 경쟁보다 정당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며 “그렇게 되면 (개별 의원실의) 국회의원 급여와 보좌진 수를 줄일 수 있어 동결된 예산으로 증원된 의원들이 나눠 쓰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여성·청년·노동·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정당들이 국회에 진입하게 되고, 한 정당이 과반을 얻기 어렵게 돼 협치의 일상화로 한국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론 부담감,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 등으로 정치권에서도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하나로 모아지진 않고 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당론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개인적으론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의원 정수 확대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선관위 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며 “처음부터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으로 접근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의원 정수 확대 필요성과 신중론이 공존하고 있다.
김규남 이정훈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