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국회에서 정의당 주최로 열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피해사례 간담회’ 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례1 “대한항공 자회사로 항공기 출발·도착을 지상에서 준비하는 지상조업서비스, 수하물 탑재·하역, 항공기 급유 등의 업무를 하는 ‘한국공항’은 ‘1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1년 내내 연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24시간 교대근무체계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월평균 9일이고, ‘10시간 연속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날’이 월평균 6일이나 되다보니 노동자들은 사내에서 2~3시간 쪽잠을 자고 조업현장에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탄력근로제 실시로 인해 지난해에는 지상조업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한국항공은 현재 탄력근로제를 1개월 단위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1년 내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여야합의로 단위기간이 현재보다 연장돼도 우리 현장에는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탄력근로제 자체를 폐기해야한다.”(서우석 민주한국공항지부 홍보부장)
#사례2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으로 현장에서 가전제품 수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주로 여름에 에어컨 수리일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계절집중업무’다. 정부가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내년부터는 근로시간 단축 혜택을 보게 되고, 업무가 집중되는 여름에도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됐다. 하지만 현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1년으로 늘리면 여름내내 일만하게 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과 주말 휴식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또 여름에 땡볕에서 사다리 등을 타고 주로 옥상, 건물 외벽 등에서 일을 하는데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과로사나 추락사한 노동자들도 있다. 일이 집중적으로 늘어나면 노동시간을 비정상적으로 늘릴 게 아니라 노동자를 고용해 노동자수를 늘려야한다.”(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회장)
#사례3 “방송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한 지 15년됐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방송스태프 2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를 보면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된 지난 7월 이후에도 스태프들의 일평균 노동시간은 17.7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도 거의 20시간에 가까운 노동에 시달려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탄력근로제를 하면 주 64시간을 일할 수 있는데 일 단위 노동시간 제한 규정은 없기 때문에 하루 12시간씩 5일동안 총 60시간 할 일을, 3일 동안 하루 20시간씩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8월 30대 젊은 스태프가 일을 마치고 귀가했다가 돌연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방송사는 상황 개선을 위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13일 국회에서 정의당 주최로 열린 ‘탄력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에 따른 피해사례’ 간담회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쏟아졌다.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로제를 확대 적용한다”는 합의 내용과 관련해 여야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1년으로 확대하는 안에 대해 공감대를 이뤄가는 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의 문제점에 대해 간담회에 참석한 이훈 노무사는 사용자의 임금절감 수단으로의 악용과 노동자의 건강권 위협을 꼽았다.
“단위기간을 1년 이상으로 확대하면 사업주는 연간 312시간의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의무를 면제받게 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확대는 임금절감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많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주52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주 64시간 근로가 가능하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면 3개월 이상 연장근로가 가능하고, 1년으로 확대하면 6개월 이상 연장근로가 가능해진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업무시간이 12주간 주당 평균 60시간(4주간 주당 평균 64시간) 과로한 경우 뇌출혈,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병할 때 업무상 재해로 본다. 단위기간을 6개월만 확대해도 12주동안 64시간의 근로시간이 발생해 산재보상보험법상으로도 과로사 위험이 커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오후 10시 조퇴, 밤 12시 칼퇴, 오전 2시 야근’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IT업계 상황과 관련해 오세윤 민주노총 네이버지회장은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장시간 노동 합법화와 수당 최소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다. 이는 노동 존중을 강조해온 정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2018년에 비로소 연 ‘주52시간 노동시대’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뿌리까지 휘청거리고 있다”며 “기업이 노동력을 집약적,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영기법을 찾는 노력은 게을리하고 경쟁력 운운하며 다시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체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임기 내에 OECD수준인 연간 1700(한국은 2000여시간)시간대 노동시간에 진입해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겠다는 정부가 사용자들의 부당한 요구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탄력근로제를 확대할 경우 현재 고용노동부 과로사 관련 기준으로 돼 있는 ‘12주 평균 60시간 초과 노동’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말 그대로 ‘합법 과로사’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이 대표는 “이 문제가 결코 최저임금법 산입범위 개악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할 것”이라며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고 노동조합이 대화의 파트너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밝혔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