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여상규 위원장이 정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렸던 이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증인선서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하며 사법부 신뢰도 하락을 이유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자리를 뜨며 국정감사는 파행됐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장이 ‘사법농단 의혹’ 관련 현직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의에 대해 “현직 법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며 “사법부를 정치화하는 일”이라고 비판 목소리를 냈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여 위원장은 국회의 법관 탄핵소추가 발의될 경우 당연직으로 소추위원장을 맡게 된다.
여 위원장은 2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사법부를 정치화하고, 정쟁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법관 자격이 없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검찰 수사가 5개월째 계속되는데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특정도 아직까지 안되고 있다”면서 “아무것도 특정되지 않아 요건도 안 갖춘 탄핵을, 그것도 (탄핵요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법관들이 운운하는 것은 성급하고 부적절한 행위”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탄핵요건을 갖출 만 하다는 여당 쪽 지적에 대해선 “범위나 혐의가 명확했다면, 검찰이 최소한 기소라도 하지 않았겠느냐. 지금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고도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탄핵 촉구를 결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오히려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국 법원의 대표판사 119명이 모인 자문기구다. 그는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출신, 인권법협의회 출신 등이 법관대표자 회의에 많이 참석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서 “그 사람들이 사법부 내에서도 정치권에서 하는 것처럼 니편내편을 갈라 내편 아니면 타도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때 ‘재판거래’ 시도 등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 판사들부터 사법부를 정치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질문에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조사한 결과 잘못이 드러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회가 할 일은 아니며, 검찰의 수사 또한 기다려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직권남용’ 적용이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검찰은 대개 이런 경우 직권남용제로 의율(법규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는 것)하는데, 직권 남용죄는 정치적으로 악용되기 쉬운 범죄다. 상고법원을 추진하면서 정치권이나 청와대 등에서 (상고법원) 제도를 홍보하면서 정치권에 현재 재판 진행이 어떻게 되는 지 알려주는 행위를 ‘직권 남용’이나 ‘재판거래’라고 할 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판단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는 “사법부까지 정치적 물결이 미치는 일은 정치권에서 삼가야 한다”면서 “(소추안이) 가결될 일은 없겠지만, 가결되더라도 소추위원장 직을 형식적으로 수행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인 여 위원장은 ‘특별재판부 도입 법안’에도 부정적 입장을 밝혀 오는 등 사법부 관련 안건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인 법관들이 앞으로 사법농단 사건을 배당받을 가능성이 높은 재판부에 현직으로 다수 포진한 상황에서 재판 기피 신청만으로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데 여야 4당이 뜻을 모아 별도의 특별재판부 구성 법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 여 위원장은 지난 9월11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도,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 관련 영장이 줄줄이 기각되는 데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재판 결과의 당·부당을 국회에서 의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질의를 가로막았다가 박지원 의원과 “당신이 판사냐” 등 설전을 벌인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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