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9일 국회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법안과 대책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숨진지 8일 만이다.
이날 오전 9시 국회 본청 621호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회의실에서는 고용노동 소위원회 법안심사 회의가 열렸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업체 소속 김아무개(당시 19살)군이 사고로 숨진 뒤 사업자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여러 법안이 발의됐지만 2년 7개월 동안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이번 한국서부발전 사고 뒤 더불어민주당은 17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에서 정부가 지난달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 등 대책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회가 임무를 방기해 재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뒤였다. 이날 소위는 법안 논의의 첫 단계였다. 오전 11시부터는 ‘위험의 외주화 근본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 당정대책회의’도 열리면서 이날 국회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 9시 621호 : “정부가 적극성 없었다” 책임 공방
환노위 소위가 열리자마자 시작된 건 ‘책임’ 공방이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에 대해 “관련 법안이 환노위에 여러 건 제출되었는데도 보수 야당의 반대로 처리하지 못했다(지난 17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여당 비판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반박에 나선 것이었다. 여당은 야당이 탄력근로제 확대를 요구하며 소위를 거부해 다른 법안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날 한국당의 화살은 정부를 향했다.
임이자 소위 위원장(한국당)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해 정부가 그동안 법률안을 만들고 있다고 해서 그럼 정부가 개정안을 가지고 왔을 때 개개 의원들의 법률안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정부 개정안을) 기다렸는데, 정부가 제출해 공청회 등 여론 수렴 과정을 생략하고 조속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했는데 정부에서 그 개정안에 대해 설명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냐”라며 고용노동부 차관과 담당 국장에게 “설명한 적 없죠?”라고 물었다. 정부를 탓하는 것이었다. 이에 정부 쪽에서는 “보좌진에게만 했고 의원들에게는 안했다”고 답했다. 임 위원장은 “정부가 적극성이 없다가 김용균씨가 순직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 적극성을 가졌어야 했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이번엔 민주당 환노위 간사인 한정애 의원이 재반박에 나섰다. 한 의원은 “정부 개정안이 양이 많아서 정부에서는 설명하기를 바랐는데 의원들이 안 받은 것인지 보좌진이 막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며 “저희 의원실에는 연락이 와서 제가 보고를 받았고, 야당 의원들에게도 연락을 드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임 위원장을 향해 “그게 어디서 차단됐는지 해당 의원실에서 알아보시라”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 환노위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은 수십 건의 의원들 개정안이 발의돼 있고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도 있다”며 “이 문제가 너무나도 심각하고 그동안 열악한,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일한 근로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장 오늘이라고 타결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이는 전체회의에서 여러 의원님들의 의견을 들어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9일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를 연기한다면 고용노동 법안심사에 협조하기 어렵다”고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이날도 산업안전보건법뿐만 아니라 탄력근로제 논의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정부가 거의 30년만에 정부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오늘 심사해서 처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더 여론을 수렴하고 공청회를 하는 것은 국민들이 볼 때 아직도 우리 국회가 김용균씨 사망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30여분 가량 지난 뒤 소위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3시간 가량의 논의 뒤 임이자 위원장은 오는 27일 산업안전보건 전면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합의했다”고 전하며 “21일 오전 노동계, 경영계 전문가 다섯 분을 모시고 공청회를 연 뒤 최소한 24일까지 (환노위 의결을)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 11시 206호 : “대책 부족” 장관들 질타한 우원식
오전 11시부터 열린 당정 회의는 묵념과 함께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긴급 당정 회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묵념을 할까 한다”며 “안타깝게 홀로 작업하다가 숨진 고 김용균 명복을 빌면서 묵념하겠다”고 밝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참석자들은 짧은 묵념을 마쳤다.
묵념 뒤 이해찬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라며 “지난 십수년간 사기업을 넘어 공공의 영역에까지 경영효율화, 비용 절감이라는 말 속에 소외된 죽음이 계속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의 외주화 나아가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해결을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근본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 당정대책회의'에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사망한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우원식 의원도 회의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그는 ‘민주당 민생경제연석회의 책임위원’으로 소개됐다. 2013년 5월~2016년 12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비정규직 노동권 문제에서 당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우 의원은 “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김용균 죽음 뒤에는 오로지 저비용, 이윤만을 추구한 폭력적인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라며 “과도한 외주화와 최저가 입찰 속에 갓 입사한 미숙련 노동자가 홀로 밤새 작업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틀 전인 17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합동으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날 우 의원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하는 분노와 절규가 넘쳐나는데 엊그제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위험’은 있었지만 ‘외주화’ 대책은 없었다”라며 “매우 미흡하다”고 질타했다. 옆에 앉은 이재갑, 성윤모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우 의원의 발언을 들었다. 우 의원은 “대통령은 위험, 안전 분야에서 외주화 방지에 노력해달라고 말했는데 그 뒤에 나온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첫 번째 대책에서 외주화 대책이 빠진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보완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 안전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장관 입장으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라며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해서 국회에 계류된 산업안전보건법을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시키고 그 법규를 보완할 수 있는 여러가지 외주화 방지 대책을 강구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1시간 반 가량의 논의 뒤 당정은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개선해 하청업체의 산업재해 현황을 평가에 반영하고 △산재보험의 개별실적요율제를 개편해 하청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원청에도 요율을 반영해 산정하고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관리 적용 업종에 원자력, 수력, 화력 등 발전업을 포함한 전기업종을 추가하며 △발전 5개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통합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해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여러 법안들과 시행령, 지침 등을 개정해야 한다. 우 의원은 회의 뒤 페이스북에 “오늘 회의 결과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해 지난번 정부 발표보다 진전된 결과를 낼 수 있었다”라며 “오늘 다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당정 협의를 통해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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