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선거제도 개혁안을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는 여야 4당의 움직임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대통령 독재 국가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또 이를 “선거법 쿠데타”라고 규정하며, 패스트트랙이 현실화될 경우 의원직 총사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법 당론 제출을 계속 미뤄 패스트트랙 추진의 단초를 제공한 자유한국당이 되레 ‘의원직 총사퇴’를 거론하며 반발하자, 여야는 “지금이라도 논의에 참여하라”며 비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기어이 이념독재법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선거법을 제1 야당을 패싱한 채 선거법 쿠데타를 강행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야합 처리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고, 선거제 개혁 논의의 핵심인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에 대해선 “세계에서 독일과 뉴질랜드만 도입한 제도다. 그 나라들은 의원내각제 국가다. 우리가 대통령 분권 논의도 없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겠다는 것은 대통령 독재 국가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제1 야당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는 여당에 거듭 경고하고, (패스트트랙에 올릴 경우) 의원직 총사퇴를 불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포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공정거래법 등 10가지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민생과 거리가 멀고 오직 장기집권, 좌파정권을 지속하기 위한 법이다. 이런 끼워넣기 법안을 패스트트랙을 악용해 처리하는 과정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선거제 개혁 법안 개정과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 시작’을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석달이 지나도록 자유한국당은 선거제 개편에 대한 ‘당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1월 중에 선거제 개혁 법안을 처리하기로 여야 5당이 합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이 안을 내지 않아 선거제 개혁 논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내에선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해 민주당이 제안한 비례대표 확대-지역구 축소에는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당의 입장을 ‘선거제도 개편 반대’로 정한 것도 아니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론 없음’이 당론이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유한국당의 시간끌기로 선거제 논의가 지연되자, 여야 4당은 오는 10일까지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을 내지 않으면 다음주 초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모든 정당과 함께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주말 동안 끝장토론을 한다면 합의점을 내놓을 수 있다. 이런 절박한 요청을 끝내 거부한다면 패스트트랙 등 어떤 방안도 한국당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간주하겠다”고 압박했다.
이날 자유한국당의 “선거법 쿠데타” “의원 총사퇴” 주장 등에 대해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패스트트랙이 두렵다면 국회 논의에 적극 참여하라”고 했고, 김정현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선거구제 개편을 끝내 할 생각이 없다면 말 그대로 의원직을 총사퇴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정치 논평 프로그램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