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듣다 국회의장이 있는 단상에 나가 정양석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에게 항의하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진행된 12일, 국회 본회의장은 고성과 삿대질로 뒤덮였다.
연설 초반부터 조짐이 보였다. 나 원내대표가 “지난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내려 가고 있다”고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잘한다! 잘한다!”며 격려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위헌이다”는 발언이 등장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재차 “잘한다!”를 연발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말이 되는 소리냐!” “또 물타기한다!”고 외치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에 “조용히 해요!”라며 맞받아치며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소란에 휩싸였다. 목소리가 묻히는 상황에서도 연설을 이어가던 나 원내대표가 “진짜 비핵화라면 자유한국당도 초당적으로 돕겠다. 하지만 가짜 비핵화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사대주의다!”(민주당) “조용히 해! 조용히 하란 말이야!”(자유한국당) 고성이 뒤엉켰다.
절정은 그다음 대목이었다. 나 원내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사과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민주당 의원 10여명은 아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강병원, 이철희 의원 등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하십시오!” “사과해!”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이에 질세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책상을 ‘탕탕’ 치며 “경청! 경청!”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해! 사과해!”를 외쳤다. 나 원내대표는 연설을 이어갔지만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조용히들 하세요”라고 여러 차례 자중을 요구했으나 양 쪽은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반대 편에 앉아있던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여당 책임이 있어요!”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자유한국당 쪽에서는 “민주당이 국회를 먹칠하는구나” “국회를 망신시키는 구나” “이게 국회냐”는 외침이, 민주당 쪽에서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당장 내려와라”는 고함이 계속 쏟아졌다.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듣다 퇴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연합뉴스
고성이 이어지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문희상 의장이 있는 단상 쪽으로 걸어나갔다. 이에 정양석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철희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등 양 쪽 원내 지도부가 합세해 서로에게 거칠게 항의를 이어갔다. 이철희 의원과 정양석 의원은 서로를 밀고 말리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홍영표, 이철희 의원은 자리에 들어가면서도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항의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 쪽 자리로 와서 ‘개별 항의’에 나섰다.
연설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게 되자 문 의장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본령입니다. 시작이고 끝입니다. 이건 공멸정치입니다. 상생의 정치가 아닙니다.…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듣고 그 속에서 타산지석으로 배울 거 배우고 그 속에 가장 옳은 소리가 있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게 민주주의입니다.…내가 볼 때도 상당히 논란이 있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는 정치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고, 나 원내대표가 “의장님 말씀 일부는 감사드리고 일부는 역시 민주당 출신 의장이라…”라고 말하자 이번엔 민주당 의원들이 “그만해! 그만해!”를 이어갔다.
연설을 재개한 나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가 강성귀족노조, 좌파 단체 등 정권 창출 공신세력이 내미는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로 전락했다”고 하자 다시 반발이 나왔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입 다물어!”라고 외쳤고,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어디서 반말이야”라며 맞받아쳤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노무현을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다 알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나 원내대표가 선거제 개혁 이슈에 대해 얘기하며 “비례대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하자, 국회 정치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말이 되는 얘길 해라!”라고 말한 뒤 본회의장을 나갔다.
1시간여 만에 연설이 끝나자 민주당 의원들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자유한국당을 규탄했다. 연설을 마친 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독선과 오만으로 상대방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를 안 듣는 자세로 가면 미래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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