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거대 정당들이 당장은 지금의 선거제도에 안주하는 게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불균형을 개선하지 않으면 영국의 브렉시트처럼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영국 선거개혁협회(ERS) 스코틀랜드 지부의 윌리 설리번 대표는 지난 19일 에든버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 중인 한국 국회에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영국 선거개혁협회(ERS) 스코틀랜드 지부의 윌리 설리번 대표.
설리번 대표는 유독 ‘불균형’을 강조했다. 영국의 단순 다수대표제(FPTP)가 불균형한 제도이고, 또 불균형을 초래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는 “단순 다수대표제는 30%대의 득표로 100% 권력을 쥘 수 있는 매우 불균형한 제도”라며 “스코틀랜드가 의석추가형 비례제(AMS)로 전환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고질적인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투표를 주도한 영국의 집권 보수당도 2015년 치러진 총선 득표율은 36.8%에 불과했다. 실제 1945년 이후 영국의 거대 양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은 총선 득표율이 50%를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설리번 대표는 단순 다수대표제가 사표 방지 심리를 유발해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그는 “(영국의) 2017년 총선에서 25%가 넘는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표를 주고 싶은 후보가 아닌,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를 주는 이른바 ‘전략투표’를 했다는 설문조사가 있었다”고 소개하며 “자신의 표가 효력을 갖지 못할 것이 두려워 원치 않는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는 제도가 단순 다수대표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단순 다수대표제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거대 양당 체제의 폐해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그 폐해의 핵심은 ‘지역 발전의 불균형’이라는 게 설리번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포함해 영국의 북부 지방은 노동당의 전통적인 표밭인데, 이 때문에 노동당은 이 지역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나 법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보수당은 어차피 표를 받지 못하는 지역이니까 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영국 북부 지역이 노동당의 ‘집토끼’(safe seat)로 인식되면서 거대 양당 어느 쪽도 신경을 쓰지 않아 지역 발전이 정체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해당 지역에는 그런 불만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한국의 영호남이 각각 거대 양당의 텃밭처럼 인식되면서 빚어지는 ‘지역 소외’와 닮은꼴이다.
설리번 대표는 영국 선거제의 또 다른 문제로 “단순 다수대표제로 인해 다수인 잉글랜드인들의 민심은 과다대표되고, 소수인 스코틀랜드인의 민심은 과소대표된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스코틀랜드가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이민자 수용은 찬성하는데, 그런 소수 의견은 다 묵살되고 그 반대인 잉글랜드의 다수 의견만 확대되어 반영된다”고 꼬집었다.
설리번은 스코틀랜드 의회의 연동형 비례제 도입과 관련해 “낡은 선거제도를 버리고 바뀐 시대 상황에 맞게 진보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라며 “의석추가형 비례제가 단순 다수대표제의 단점을 100% 극복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승자독식의 불균형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상당 부분 교정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영국은 두 개 정당이 불균형을 고착화하고 있지만, 스코틀랜드는 5~6개 정당이 공정하게 유권자 표를 고루 나눠 받아 의회에서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제도를 바꾼 지 20년,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정치문화도 점차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영국 정당들은) 굳이 매력적인 정책이나 공약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지역구 선거에서 또 당선될 테니까. 하지만 연동형 비례제에서는 정당득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속해서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야 하고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런던과 에든버러를 오가며 선거제도 개혁 활동을 하는 설리번 대표는 최근 영국 상원 개혁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했다. 21세기에도 ‘귀족성’을 띠며 세습하고 있는 상원을 선출직으로 개혁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발원지 영국 의회에서도 개혁할 게 많은 것 같다’는 말에 설리번 대표는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돼야 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이번에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영국이 한국을 본받아 선거제도 개혁에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글·사진 에든버러/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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