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공무원 휴대폰 사찰 관련’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소라면 최고위원회가 열릴 23일 오전 9시, 자유한국당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특별감찰반 진상조사단 회의’를 열었다. 외교부 공무원이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고교 선배인 강효상 한국당 의원에게 유출한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회의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번 와달라, 구걸 아니었나. 한-미 동맹 파탄을 포장하려고 어떻게든 악수하는 사진 한장 보여주려던 게 아니냐”고 했다. “밖으로는 구걸하러 다니고, 안으로는 기만하고 탄압하는 정권”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한 내용에 ‘구걸’이란 딱지를 붙이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판단은 국민이 할 것이다. 다만 “폭로 내용은 굴욕 외교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 성격”이라는 주장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강 의원의 ‘폭로’ 내용은 이렇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밤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재차 요청했다.” 한 나라의 정상이 다른 나라 정상에게 방문을 요청하는 건 외교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게 굴욕인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지 않을 경우 (매파인) 볼턴 보좌관이 혼자 5월 말에 올 필요는 없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고 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게 ‘구걸’인가? 한국당은 지금껏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도 못 하고 만나지도 못한다며 ‘코리아 패싱’ ‘한-미 동맹 균열’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나?
국가 정상 간 대화를 외교부 공무원이 야당에 빼돌리는 나라를 미국에선 어떻게 볼까. 이건 한-미 동맹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품격과 수준’의 문제다.
한국당은 새누리당 시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정략적으로 공개해 국제적 망신을 산 적이 있다.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야당의 몫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수세력이 그토록 지키려는 한-미 동맹마저 내팽개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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