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맞아 살펴본 주요 법안 현주소
20대 국회서 61개 법안 대표발의
남은 43개 법안은 국회 계류중
“법도 인간의 체온이 느껴져야”
노동자 편에서 법안 만들고
사법·정치개혁 법제화 공들여
지난 2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 추모제 및 묘비 제막식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왼쪽 둘째)와 고인의 아내 김지선(왼쪽 셋째)씨 등 참석자들이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남양주/연합뉴스
고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지 1년이나 흘렀지만, 그가 지키려던 가치가 담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살아 있다. “법도 인간의 체온이 느껴져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안을 왜 만드느냐”는 고인의 말처럼, 그가 20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한 61건의 법안에는 ‘인간의 체온’이 담겨 있다. 그중 43개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고인의 1주기를 맞아 ‘노동’부터 ‘사법개혁’ ‘정치개혁’까지, 그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들였던 주요 법안의 진행 상황을 살펴봤다.
■ 노동자의 편에서
2017년 4월 노회찬 의원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대형재해는 대체로 기업의 위험관리시스템 부재 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법은 안전관리 주체인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이런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법안에 사업주·경영책임자와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직무유기를 하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추가했지만,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당시 노 의원은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중대재해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때엔 경영자와 기업에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는 입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리해고 제한법’도 빼놓을 수 없다. 현행법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 경영상 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 의원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보고 “기업구조, 재무현황, 사업현황, 외부기관 신용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2016년 7월 발의했지만, 이 역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 권력의 대척점에서
노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자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권력기관 개혁에 관심을 쏟았다. 2005년 8월 옛 국가안전기획부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고위 검사 7명의 이름을 공개한 ‘삼성 엑스(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은 뒤인 2013년 3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투에서는 졌지만, 아직 전쟁에서 진 게 아니다. 문제는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구조적인 비리나 대형 부정사건을 없애고 줄이고 처벌하기 위해 어떤 제도와 양식을 만들어낼 것이냐가 중요하다.”(노회찬 1주기 추모집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중에서) 그의 이런 고민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으로 이어졌다. 현재 공수처 설치 관련 법안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돼 있다.
노 의원이 생전 ‘국가걱정원’이라고 꼬집었던 국가정보원에 대한 전부 개정 법률안도 지난해 1월 그의 이름으로 대표발의 돼 있다. 국가정보원의 이름을 ‘대외정보원’으로 바꾸고, 조직과 직무 범위를 명확히 해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 정보위원회에 계류 중이고, 논의에 진척이 없다.
■ 그리고, 정치개혁
고인은 3선 국회의원이었지만, 늘 ‘소수정당’ 의원으로서 양당제의 틀을 깨려고 노력했다. 20대 국회 들어 노 의원이 가장 먼저 발의한 법안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었다. 교섭단체의 권한은 연간 국회 운영 기본일정 작성 협의, 상임위원회 간사 선임 등 막강하지만, ‘의원 20명 이상’이라는 기준은 쉽게 넘지 못할 벽이었다. 노 의원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5명 이상으로 완화해 소수정당 소속 의원도 쉽게 교섭단체를 구성해 다양한 사회계층의 의사를 국회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거대 정당들이 이에 응할 리 없었다. 결국 정의당은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꾸렸지만, 노 의원이 세상을 떠나면서 의원 수가 19명으로 줄었고, 교섭단체는 자동 해체됐다.
노 의원은 이 외에도 현행 공직선거법이 청각장애 선거인을 위한 수어 또는 자막 방영을 ‘임의규정’으로 두고 있어 청각장애인의 참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의무규정’으로 바꾸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대담이나 토론회의 경우에는 수어 통역사를 2명 이상 한 화면에 배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 법안은 선거법 개정안을 다루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 국회 청소 노동자가 기억하는 ‘노회찬 없던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