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이 가결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천신만고 끝에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인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역대 최장(107일째)이었던 2000년 추경안에 이은 두번째 늑장 처리 기록을 세웠다.
앞서 여야는 2일로 예고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제외 결정 전에 추경과 함께 일본의 보복적 조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전날 합의에 실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한 결의안 내용을 이날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쌓인 숙제 황급히 ‘뚝딱’ 국회는 이날 저녁 본회의를 열어 재석의원 228명 중 찬성 196, 반대 12, 기권 20표로 추경안 5조8300억원을 가결했다. 정부안 6조7000억원에서 약 8700억원 줄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각각 지난달 22일과 전날 의결한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과 ‘동북아시아 역내 안정 위협 행위 중단 촉구 결의안’ 및 141개 민생법안과 3개 인사안건(권익위원·인권위원·주식백지신탁위원 선출)도 처리됐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에 대응하는 예산이 포함된 추경안이 일본 각의 결정 전에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추경안 감액 규모를 둘러싼 여야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추경 가운데 적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3조6000억원 전액 삭감을 포함해 최고 4조7000억원 감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7000억원을 감액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한국당 소속인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에선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자’고 하는데 민주당은 ‘3조 이상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말만 한다”고 말했다. 반면 예결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일본 대응 및 재해 예산 재원 대부분이 국채 발행으로 조달되는데, 두 예산을 처리하자면서 국채 발행에 반대하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원내대표들이 나섰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1일 밤 10시30분께 총액 5조8300억원에 합의했다.
■ ‘음주’ 예결위원장의 책임 방기 민주당은 원내대표들이 합의했는데도 처리가 늦어진 데는 김재원 예결위원장의 임무 방기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1일 밤 원내대표 간 협상 중 김재원 위원장이 연락 두절 상태였다. 시간이 없어 위원장 없이 3당 원내대표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총액에 합의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밤 11시가 넘어 나타나 합의된 총액에 시비를 걸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2일 새벽 4시께까지 총액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앞서 전날 밤 11시10분께 국회 본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음주 탓에 기자들과 문답 도중 말끝을 흐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추경안 감액·증액 논의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시작됐고, 일본 각의 결정이 알려진 지 2시간여 뒤인 낮 12시20분께 다시 원내대표들 합의대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추경안 합의 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터무니없는 현금 살포성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국채 발행 규모도 3000억원이나 삭감하는 쾌거를 이뤘다”고 자평했다. 반면 윤후덕 민주당 예결위 간사는 의원총회에서 “정말 치욕적인 예산심사였다. 삭감 규모가 20.7%다. (역대) 추경 예산이 제일 많이 삭감된 게 2017년 9.5%였다”고 성토했다.
■ 민생법안 141건 처리 이날 본회의에선 카풀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택시 월급제를 시행하는 법안 등 141건의 민생법안이 통과됐다.
여야는 평일 출퇴근 시간인 오전 7~9시, 오후 6~8시에만 카풀 영업을 허용하고, 법인택시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월급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과 ‘택시운송사업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현행 5일에서 10일로 늘리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도 처리됐다.
김원철 정유경 노현웅 김규남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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