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시청 주변부터 광화문광장 일대가 자유한국당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 와 범보수단체, 기독교 단체 회원 등이 각각 개최한 정권 규탄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 차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개천절인 3일 보수 성향의 정당, 종교단체, 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을 요구하는 동시다발 집회를 열었다.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 열렸던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현 정부 들어 열린 보수 집회로는 최대 규모였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300만명이 결집했다고 주장했다. 진보와 보수, ‘조국 반대와 수호’, 검찰개혁 등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 등 다양한 전선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장외 세 대결로 번지는 모양새다.
■ 예상 뛰어넘는 규모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시청,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10차선 도로는 몰려든 인파가 흔드는 태극기와 성조기 물결로 가득 찼다. 시위대가 참가하는 집회는 동시다발 제각각이었지만, 손팻말은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 ‘문 정권 심판 조국 구속’으로 같았다.
한국당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는 광장 북쪽에서 열렸다. 대규모 참석 인원에 한껏 고무된 나경원 원내대표는 연단에 올라 “지난주 서초동에서 시위하는 거 보셨냐. 그 좁은 골목에 200만명이 설 수 있냐”며 “광화문이 서초동 도로보다 훨씬 넓은데, 그들이 200만명이면 우리는 오늘 2천만명은 왔겠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조차 몰려든 인파에 놀란 분위기였다. 대구에서 온 김준희(65)씨는 “그동안은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부담스러워 참석은 하지 않았는데 서초동 촛불집회에 지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도 “생각보다 정말 많이 와서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 고무된 분위기에 막말도 쏟아져
많은 인파에 고조돼 평소보다 과격한 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집회 준비를 위해 개천절 기념식도 참석하지 않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조국 장관을 임명하는 것이 제정신이냐. 대통령이 요새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며 “북한이 미사일을 쐈는데도 대통령은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계속 김정은 대변만 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맞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9일째 단식을 이어가는 이학재 의원은 연단에 서서 “문재인을 둘러싸고 있는 그 쓰레기 같은 패거리를 다 싹 쓸어버려야 된다”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딸은 왜 동남아로 이주했겠느냐. 문 대통령 아들은 왜 공공사업에 뛰어들겠느냐.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아는 자리다. 문 대통령과 조국은 불행의 한 몸”이라고 주장했다.
광장 한쪽에서는 기도 소리가 울려퍼졌다. 광장 남쪽에서 열린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주최의 총궐기대회에서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하늘이 집회를 도와줬다. 태풍을 쫓아내줬다. 하나님께 예를 표하는 예배를 드린다”며 기도했다. 이 집회에 참여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빨갱이 기생충을 청와대에서 끌어내기 위해 오늘 우리는 태극기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문 대통령은 국가를 문란하게 한 내란죄”라며 “국민의 이름으로 당장 대통령 문재인을 파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세대결 양상에 우려 목소리도
한국당은 이날 집회를 위해 각 지역위원장에게 인증샷까지 요구하며 대대적인 참석을 독려했다. 동원 능력이 좋은 보수 기독교계의 전폭적인 참여도 한몫했다. 다만 이날 집회 현장에는 자발적인 참가자도 꽤 많아 보였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문 대통령을 뽑았다고 밝힌 한 40대 여성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이번 사태를 살펴보며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의혹이라도 법을 지켜야 하는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조금 더 깨끗해지고, 기득권보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질 것 같아서 문 대통령을 뽑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가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집회에 맞대응한 세 대결 양상으로 번지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이날 오후 3시20분께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하던 보수단체 회원 등 35명이 경찰에게 각목을 휘둘러 체포됐다. 저녁 7시께 집회가 끝나고도 일부 참가자들이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며 경찰이 설치한 플라스틱 차단벽을 밀어 무너뜨리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여 11명이 추가로 연행됐다.
처음으로 보수 집회에 나왔다는 최윤경(37)씨는 “위법투성이인 조국 장관을 감싸는 대통령과 여당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나왔다”면서도 “막상 나와보니 우리가 몇명 왔다, 저쪽보다 많다는 식의 비교로는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움도 크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50대 남성은 “조국 사태로 돌아섰지만, 집회에 와보니 여기서도 별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보인다”고 씁쓸해했다.
장나래 정환봉 서혜미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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