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참석자들이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치’가 안 보인다. 분노에 찬 지지자들의 세 대결이 정치를 대체한 형국이다. 서초동에서 광화문으로, 다시 서초동으로. 자발성의 ‘순도’는 서초동이 높다. 그러나 어디에 더 많은 수가 모이느냐에 따라 정의와 불의가 판가름 나기라도 하는 듯, 절박하고 필사적이긴 서초동과 광화문이 매한가지다. ‘국민(지지자들)을 대리해 갈등을 풀어야 할 정치가 제구실을 못 하니, 국민의 몸과 마음이 고달파진다’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4일 오전 여야 지도부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전날 열린 ‘조국 사퇴’ 집회를 두고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동원집회, 폭력집회’라 비난했고, 자유한국당은 ‘넥타이부대까지 나온 자발적 집회’라고 의미를 추어올렸다. 긍정·부정의 주체만 달라졌을 뿐, 지난달 28일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를 두고 여야가 내놓았던 평가와 판박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10·3 국민주권 대투쟁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제 길로 돌려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썼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전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1987년 넥타이부대를 연상케 하는 정의와 합리를 향한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의 외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역위원회별로 수백명씩 버스로 사람을 동원하고, 공당이 이런 일이나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꾸짖었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도 “깨어 있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와 달리 어제 한국당의 폭력 집회는 당과 종교단체 등이 이끈 군중 동원 집회”라고 깎아내렸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 명의로 전날 집회를 이끈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내란 선동 및 공동 폭행 교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여야의 반응이 극으로 치닫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모두에게 자중을 촉구했다. 문 의장은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 지도자라는 분들이 집회에 몇명이 나왔는지 숫자 놀음에 빠져 나라가 두 쪽이 나도 관계없다는 것 아닌가. 여야 정치권이 자중하고 민생과 국민 통합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주도권 장악을 위해 여야 모두 갈등을 이용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집권세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우리 지지층만 보고 정치를 하고 있다. 당장엔 유용할 수 있어도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고 우려했다. 자유한국당의 영남권 3선 의원도 “대의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쪽으로 시민들의 에너지를 승화해야 한다. 정치 정상화, 사회 정상화를 위해 당이 계속 집회를 여는 게 맞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제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권한을 위임받아 나라를 이끌라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은 것인데,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정치권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검찰개혁뿐 아니라 경제·외교·민생 등 ‘촛불’이 부과한 개혁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책임이 큰 집권당이 멀리 보고 상황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원철 김미나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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