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후임 비서실장에 노영민 주 중국대사를 임명하는 내용을 포함한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후임 비서실장인 노영민 주 중국대사. 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권도 총선 때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인적쇄신’의 복잡한 퍼즐 풀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어느 당이 큰 갈등 없이 인상적인 인적쇄신을 해내느냐가 선거의 주요 변수인 만큼, 정치권에서는 임 전 실장의 불출마가 여권의 후속 인적쇄신에 따른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류의 선제적 자기희생’으로 볼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측근들이 희생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는 점에서 인적쇄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잡음이나 저항도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친문’ 핵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백원우 부원장이 이미 ‘총선 불출마’ 의사를 이미 밝혔고, 이에 더해 이른바 ‘신친문’으로 분류되는 임 전 실장까지 불출마 대열에 합류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류도 희생했으니 중진들도 희생하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레 형성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 관계자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했던 ‘진박 공천’과 정반대로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행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일찌감치 ‘친문공천’이라는 용어와 거리를 두겠다는 취지다.
■ 다선 중진들의 선택은? 다선 중진들은 매번 총선 때마다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곤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현역 다선 의원 중 5명이 직간접적으로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당내 최다선인 7선의 이해찬 대표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때 “튼튼하게 당을 닦아 재집권할 기반을 마련하는 게 저의 마지막 역사적 소임”이라며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다. 국회의장으로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문희상(6선) 의장도 내년 총선에 나가지 않는다. 5선 원혜영 의원과 3선 백재현 의원 등도 불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안전부 장관인 진영(4선) 의원도 2선 후퇴가 확정적이다. 당대표를 지낸 5선 추미애 의원도 입각 여부에 따라 2선 후퇴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정세균·이석현(이상 6선), 박병석·이종걸(이상 5선), 강창일·김부겸·김진표·변재일·설훈·송영길·안민석·오제세·이상민·조정식·최재성(이상 4선) 등 다선 의원 중에 추가로 거취를 고민하는 이가 나올 수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용퇴 기류는 있었지만 흐름으로 이어질 동력은 부족했다”며 “(임 전 실장 불출마가) 당 안에 도도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86세대도 영향권 임 전 실장이 386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이들도 여파를 피해갈 순 없어 보인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20년간 후배 양성을 못했지 않느냐. 그런 데 대해서 강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라며 “촉망받던 386 선두주자인 임 전 실장이 그런 결단을 했다고 하면 여권 내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당과 정부, 청와대의 쇄신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선 86세대 집단퇴장론에는 선을 긋는 분위기다. 86그룹 대표주자 중 한명이자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교통방송>(TBS) 라디오에 나와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가 돼 있다고 말한다. 모욕감 같은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재성 의원도 “민주당은 공천룰을 시스템 중심으로 짰기 때문에 인위적인 공천 물갈이가 필요 없는 정당이다. 이건 86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강조했다.
집단퇴장은 아니더라도 86세대의 순차적 퇴각은 이미 진행 중이다. 임종석 전 실장, 양정철 원장, 백원우 부원장 등은 이미 불출마로 정리됐고, 입각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불출마로 정리가 끝났다. 또 다른 386 대표주자인 이인영, 우상호, 유은혜 의원 정도가 남아서 총선을 이끄는 그림인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86세대에 전부 나가라고 할 수는 없다. 임 전 실장이 물러나서 이인영·우상호 의원은 오히려 가벼워졌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청와대 출신도 예외 없다? 임 전 실장의 불출마 선언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총선 출마 희망자들에게도 강력한 경고가 될 수 있다. 임 전 실장이 원했던 종로 출마를 청와대에서 나서 정리하거나 챙겨주지 않고, 인위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민주당이 의도하는 ‘친문공천은 없다’는 기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임 전 실장 불출마는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에게 ‘청와대 덕 볼 생각 말라’는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임 전 실장 불출마 선언 며칠 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 (험지 출마나 불출마 등) 청와대 참모 출신부터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 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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