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김재원 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여야 간사들과 악수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국회 본청 638호.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 회의에서 법제처의 ‘남북법제 연구’ 예산 심사가 시작되자,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의원은 “남북 분단을 계기로 분야별로 다 연구하겠다는 것 아닌가. 아주 연례행사”라며 ‘삭감 의견’을 냈다. 법제처 관계자가 “북한법을 분석해 남북 교류와 통일에 기여하는 법제처 직무”라며 (예산안) 원안 유지를 부탁했지만 이 의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김재원 예결위원장이 말했다. “다른 의견 없으시면 보류하고 넘어갑니다. 다음 사업.”
11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국회 예산소위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전체 회의 가운데 ‘보류’라는 단어는 무려 450회 가까이 등장했다. 17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예비심사 보고서를 토대로 513조5천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의 증·감액을 논의해 결정하는 것이 예산소위의 주요 역할이지만, 상당수 항목이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보류’되고 있는 것이다. 소위에서 심사된 예산안은 오는 29일까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의결을 거쳐야 한다. 결국 보류된 항목은 의결 직전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들만 모이는 ‘깜깜이 소소위원회’에서 졸속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예산 항목의 ‘보류’ 결정은 대부분 각 항목의 감액 규모를 상임위가 정한 범위 이내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과, 그 이상으로 감액할 수 있다는 야당 의원들이 맞서면서 되풀이되고 있다. 하루에 예산안 30개 항목에 보류 결정이 내려졌던 지난 11일 오후 회의에서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임위에서 감액을 논의하고 액수를 정했다는 것은 여야가 이미 합의를 거쳤다고 봐야 한다”고 야당 위원의 무리한 감액 요구를 비판했다. 이에 이종배 한국당 의원은 “소위 위원은 예결위의 위임을 받은 것이다. 상임위에서 결정한 범위 내에서 감액 규모를 정하라는 데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받아쳤다. 민주당 관계자는 “심사 기한이 정해져 있지만 대부분의 예산안 항목이 정부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보니 (예산소위 기간 안에)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예산소위에서 넘어온 ‘보류 항목’들은 결국 여야 간사들만 모이는 ‘소소위’에서 최종 증감액이 결정된다.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 예결위 소위원회와 달리, 여야 간사들만 모이는 ‘소소위’는 관련 규정이 없어 언론 등 외부 감시도 불가능하고 회의록도 남지 않는다. 소소위에 참석하는 여야 간사를 통해 지역구 관련 예산이나 선심성 예산을 요청하는 ‘쪽지·카톡 예산’이 해마다 등장하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예산소위가 예산의 적절성을 논의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야당은 무조건 ‘깎고’ 여당은 ‘방어하는’ 정쟁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은 “당장 소소위라도 회의 내용을 모두 공개해 예산안의 증감액 결정 과정을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예결위를 일반 상임위로 상설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해 심의 위원들의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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